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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Feb 26. 2022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온도차이

체감온도 백도씨

오래전부터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다녀오는 날이 있었다. 유독 답답한 날, 점심시간이라도 업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그럴 때가 많았다. 이동시간을 빼면 남는 30분 정도를 남편도 아이도 없는 빈 고요한 거실에 앉아 빵을 씹고 커피를 마시면 숨통이 트였다.




1월에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사무실이 집에서 멀어졌다. 왕복 시간 빼면 집에서 커피 한잔 원샷 하기도 빠듯하다.

점심시간이라고 민원인이나 전화가 덜 오는 것도 아니니 책상에 앉아 책을 펼 수 없는 노릇이다.

커피 한 잔 마시러 나가고 싶어도, 직원들에게 선뜻 나가자 말할 입장이 아니다.

야근을 안 하기 위해 점심시간에도 일하는 직원이 있고, 팀장이랑 커피 마시는 게 노동으로 느껴질 직원들도 있을 수 있다고 나름 배려한 것이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나: 점심시간에 좀 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혼자 카페 가서 커피 마실 수도 없고. 그러다 직원들이나 단체장님들 마주치면 좀 이상하지 않나?

남편: 제일 좋아하는 거 해. 카페 가서 책 읽어.

나: 그럴까? 그래도 될까?

남편: 그러다 직원들이나 누구 만나면..

나: 만나면?

남편: 와, 저 팀장 진짜 특이하다고 소문날 거야.

나: 솔직한 조언 고마워.


기가 차지만 현실이다. 온라인 속 지인들은 늘 카페에서 혼자 책 읽는 것이 일상이지만 나의 삶에선 특이한 거다.



얼마 전 본청에 있는 직원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크림 커피가 맛있는 사무실 앞 카페엔 전문가가 오래 키운 듯한 특이한 화분이 많고, 테이블 위엔 두꺼운 원서들이 있다.

원서 제목을 함께 해석해 보다 다들 형편없는 실력을 확인하고는 한참을 웃었다. 늘 더 웃기고 싶은 욕심이 있는 나는 한 마디 보탰다. " 나 사실 원서 읽기 모임도 하는 사람인데.ㅋㅋㅋㅋ"

"뭐? 원서를 왜 읽어? 차라리 회화 공부를 해!"

내가 아는 블로거나 유튜버들은 대부분 원서 읽기를 노력하지만, 직장에선 신기한 이야기이다.




흔치 않게 나의 원서 읽기와 필사에 대한 노력도 이해해 주는, 후배가 있다. 며칠 전 메신저가 왔다.

후배: 팀장님! 우리 술 언제 마셔요? 애들이 보고 싶대요.

나: 요즘 약속은 없지만, 매주 zoom 모임이 있어서 좀 부담이 되네. 3월 중순 이후에 잡아줄래?

후배: zoom이요?? 우와. 팀장님도 참 특이하시네요!




남편과 서로의 진로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남편: 글을 쓰는 쪽으로 계속해봐.

나: 글도 잘 못 쓰는데, 왜??(기대 기대*_*)

남편: 글을 쓰려는 사람이 없잖아. 블루오션이야. 나: 도대체 뭔 소리야~ 내 주변 사람 열이면 열 다 글을 쓰는데!!!

남편: 그래??? 내 주변엔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단톡방이고 아무 데도 그 누구도 글쓰기에 관심 없는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온도 차이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구독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서로이웃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소통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온라인 세상은 온통 책 읽고 줌으로 책 모임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지구인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든다.(나 빼고.)


본캐, 부캐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직장인으로서의 본캐, SNS 유저로서의 부캐로 요리조리 적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세상 속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냉온욕을 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를 오가며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 하며 내 속의 산과 알칼리 평행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통신을 단절하고 일상을 보낸 반나절과, 일상을 단절하고 이렇게 주절대며 보내는 몇 시간이 합쳐져 내가 버티는 미적지근한 하루가 완성되었다. 오늘 하루와도 잘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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