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기업, 개인의 새로운 게임
인류 역사에서 지식은 언제나 희소한 자원이었다. 고대 문명에서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특권층에 한정되었고, 중세 유럽에서 책은 수도원에서 손으로 베껴 써야 하는 귀중품이었다. 근대에 들어 인쇄술이 발명되고 대중 교육이 확산되면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은 점차 넓어졌지만, 전문적인 영역의 지식은 여전히 특별한 경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의학, 법학, 공학 같은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수년간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암묵지는 해당 기관과 시스템 안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지식의 전수는 체계화된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AI 시대의 도래는 이 오래된 전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전문지식이 점점 더 공공재의 성격을 띠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하려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만나거나, 최소한 관련 서적과 논문을 찾아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AI를 통해 누구나 전문적인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복잡한 법률 개념에 대해 물어볼 수 있고, 의학적 증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프로그래밍 코드의 작동 원리를 한 줄 한 줄 해설받을 수 있다. 물론 AI에는 할루시네이션이라는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 때로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이 아닌 정보를 생성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논문이나 서적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소스를 함께 제공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억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식 습득의 경로가 폭발적으로 다양해졌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차원을 넘어선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어야만 전수 가능했던 지식들이 이제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훨씬 더 빠르게 습득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특정 분야를 깊이 공부하려면 해당 분야의 커리큘럼을 따라가야 했고, 그 커리큘럼은 교수진과 교육기관이 설계한 대로 진행되었다. 학습의 순서, 속도, 깊이 모두 기관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학습자가 자신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학습 경로를 직접 설계할 수 있다. 궁금한 것을 즉시 물어볼 수 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요청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속도로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민주화다. 더 이상 특정 대학에 입학해야만, 비싼 등록금을 낼 수 있어야만, 특정 지역에 살아야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연결과 학습 의지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전문적인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이 민주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비판적 사고와 정보 선별 능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 습득의 물리적, 경제적 장벽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지식 희소성 시대의 종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식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면, 무엇이 가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비슷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차별화는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지식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의 가치는 줄어들고,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연결하며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는가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암기와 축적의 시대에서 활용과 창조의 시대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지식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다면, 학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다. 수백 년간 학교는 지식의 전당이자 유일한 원천으로 여겨졌다. 배움을 원하는 사람은 학교에 가야 했고, 학교가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따라야 했으며, 학교가 부여하는 학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AI가 전문적인 지식을 누구에게나 제공할 수 있게 된 지금, 학교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학위의 가치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전통적으로 학위는 특정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을 완료했다는 증명이자, 일정 수준의 역량을 갖추었다는 신호로 기능해왔다.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학위를 필터링 도구로 사용했고, 사회는 학위를 통해 개인의 잠재력을 가늠했다. 하지만 학위가 실제 업무 능력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실무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위 없이도 뛰어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괴리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학위 중심의 시스템이 유지되어왔다.
그런데 이제 대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AI 시대에는 학위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경험, 실무 역량 테스트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직접 증명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이런 변화가 진행 중이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보다 어떤 프로젝트를 해봤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는 사라져야 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학교가 제공하는 가치 중 일부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래와 함께 배우고,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곳이다. 또한 학교는 구조화된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갖춰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가 제공하는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외부적 동기 부여는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가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에서 학습 촉진자로서의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AI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같은 메타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학교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교육 경로를 우회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학위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학위가 계속해서 의미를 가지려면, 단순히 과정을 이수했다는 증명이 아니라 실제 역량을 보증하는 인증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는 교육 내용과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평가 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암기 위주의 시험에서 벗어나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일회성 평가에서 지속적인 역량 개발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전통적인 교육기관이 변화의 기로에 선 가운데, 흥미로운 움직임이 기업 쪽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선도적인 기업들이 직접 교육 주체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팔란티어다. 이 데이터 분석 기업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고졸 신입을 채용하여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직접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결정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물론 팔란티어가 선발하는 인재들이 아무나는 아니다. 이들은 기존에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만한 성적과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학업 능력이 부족해서 대학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경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학위보다 학습 능력과 적응력이 중요하다는 것, 기업이 직접 교육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통적인 교육 경로가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과거에 기업은 이미 교육된 인재를 채용하는 수요자였다. 대학과 교육기관이 인재를 양성하면, 기업은 그중에서 필요한 사람을 골라 채용하는 구조였다. 교육은 교육기관의 몫이고, 기업은 교육의 결과물을 활용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이 인재를 직접 육성하는 교육 주체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고, 어쩌면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왜 그런가.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과 실무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커리큘럼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기존 기술이 도태되는 주기가 빨라지면서,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졸업할 때쯤이면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AI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몇 달 사이에 판도가 바뀌는 기술 환경에서 4년짜리 대학 과정은 너무 느리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직접 나서서 실무 중심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기업은 실제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은 이론과 실무를 통합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배우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은 없다. 교실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해보면서 진짜 실력이 길러진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우려도 있다. 기업이 교육을 담당하면 기업의 필요에 맞춘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범용적인 교양 교육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 기업 간 이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또한 모든 기업이 교육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며,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교육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교육 투자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론적인 논의를 넘어 실제로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실험하고 있는 곳이 있다. 위레이저는 3년 전 AI FIRST를 선언하며 변화의 최전선에 섰다. 단순히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조직 전체의 업무 방식을 AI 중심으로 재편하고, 구성원들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AX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육성해온 경험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위레이저의 경험이 증명한 것은 적절한 교육 설계와 AI 도구의 결합, 그리고 학습자의 의지만 있다면 전문성 습득의 속도와 깊이가 전통적 방식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았으면 수년이 걸렸을 역량 개발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AI가 학습 과정에서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고, 개인별 맞춤형 학습 경로를 설계하며, 실습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학습자는 자신의 약점을 즉시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으며, 강점은 더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중요한 통찰이 있다.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고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는 능력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AI 시대에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문제에 적용하며,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가다. 위레이저의 AX 교육은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활용 역량과 적용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 하나 중요하게 확인된 것은 끊임없이 학습하는 태도의 가치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오늘 배운 것이 내일이면 구식이 될 수 있다. 특정 도구나 기술을 마스터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또 배워야 하고, 기존 도구가 업데이트되면 적응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특정 기술에 대한 숙련도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빠르게 학습하고 적응하는 능력이다. 위레이저는 이러한 학습 민첩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해왔다.
3년간의 실험은 완벽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속도로 적응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은 앞으로의 교육 설계에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어떤 접근법이 학습 동기를 높이고 어떤 접근법이 저항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얻었다. 이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오직 실제 실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이다.
우리는 지금 교육과 지식 전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학교는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가. 기업은 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개인은 스스로의 학습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학교는 지식의 창고에서 학습의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AI 도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AI가 할 수 없는 영역, 즉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 해결, 인간적 연결과 협력 같은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학위는 단순한 과정 이수 증명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역량 보증서로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업은 교육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교육기관이 배출한 인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인재를 직접 육성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팔란티어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는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위레이저의 3년간 AX 교육 경험은 이러한 기업 주도 교육이 실제로 효과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개인에게는 아마도 가장 큰 변화가 요구된다. 더 이상 학교나 기관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필요한 역량을 파악하고, 적절한 자원을 찾아 활용해야 한다. AI는 이 과정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결국 학습의 주체는 인간 자신이다.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배울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결정은 각자의 몫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식의 전수와 배움은 더 이상 특정 기관이나 시스템의 전유물이 아니다. AI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학습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변화를 위기로 볼 것인가, 기회로 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를 외면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교도, 기업도, 개인도 모두 적응하고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