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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07. 2020

37. 전역을 했다.

전역을 했다. 얼마 전에.

2년 4개월. 아니 그 이상의 청춘을 들여 간부로 지낸 시간이 끝났다.

용사들이 내 앞에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했다.

체력도 리더십도 떨어지는 반푼 어치 간부, 법적으로 끌려온 이들에게 명령할 권한만 있는 사람이니.

그냥 편한 형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냥 편안하게, 나가서 뭐할지, 그런 것이나 얘기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바람대로 나는 편안한 간부가 되었다.

나는 무서운 사람도, 싫은 사람도, 자신을 숨길 사람도 아니었다.

당직을 설 때는 그냥 밤새 오는 이들과 오늘 얘기, 내일 얘기, 전역 후 얘기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랑 마지막까지 뛰는 게 좋았다.

나랑 같이 달리면 그 아이는 끝까지 열심히 뛴 아이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늘 마지막 아이랑 같이 뛰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운동을 끝내고 생활관에서 쉬고 있어도 누구도 위화감을 갖지 않았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고, 나랑 같이 이야기를 할 아이들은 이야기를 했다.

어색한 경례 소리와 쭈뼛거리는 시선들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저 아이들과 나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선택해서 왔는지, 어쩌다 보니 왔는지의 차이이지.

사회에 나갔을 때 저 아이들이 나보다 빛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역을 했다. 6개월 전에.

2년 간 쌓인 짐을 부모님의 차에 옮기기 위해 낑낑대며 위병소로 옮겼다.

전역식은 아주 간소했다. 겨우 의무복무를 마친 간부에게 무언가 있겠냐마는.

동기들은 전역패라던가 소대원들이 힘을 모은 기념품 등을 인스타그램 속에서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편안한 간부라서, 다른 용사들이 받는 것과 같은 롤링페이퍼와 전역증만 쥐고 나왔다.

그렇다. 나는 편안한 간부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간부였던 게 최선이었던 걸까.

아이들에게 편안한 간부였다고 해서 나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내가 떠나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부대에서 금세 지운 듯 사라지겠지.

편안했던 것만큼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모래에 그린 그림처럼 사라지는 것도 빠를 것이다.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으로는 기억될까.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나랑 같이 편하게 이야기를 하던 이들도 그저 그런 간부, 적당히나 하는 간부로 기억할 수도 있다.

사람은 편했던 것을 같이한 이보단 어려운 것을 같이한 이가 더 오래 남는다고들 한다.

‘그 인간, 훈련 참 힘들게 시켰는데, 그래도 같이 훈련했던 건 참 오래 남는다.’

‘참 꼬장꼬장하면서도 뒤로는 잘 챙겨줬는데.’

그런 사람들이 군을 떠난 이들이든, 군에 남는 이들이든 그 머릿속에 남고 나는 그저 '군생활 적당히 한 사람' 정도로 남을 것이다. 그럴 것만 같다.


전역을 했다.

이 위병소를 넘어서면 아마 내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게 내 자리가 메워질 것이다.

난 그냥 수많은 간부 중 A로, 물로 가른 자리에 순식간에 물이 다시 들어차듯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편안했던 간부였던 것만큼 누구의 마음에 자국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어떤 간부는 세상에 나와보니 못내 군이 부럽다고도 한다.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도 내가 남지 않는다고, 나를 기억해주던 군대가 그립다고. 그러곤 한다.

영원히 자신의 맘 속의 군대에서 전역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전역을 했다.

부대에는 이제 내 자리 하나 없다.

편안한 간부로 전역했다. 모두의 마음속에서도.

그리고 다시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회로 나왔다.

어느 곳에도 내 자리가 없게.


전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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