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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05. 2020

35.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슬퍼.

나는 노래방을 좋아한다

하루에 7시간, 8시간이라도 늘 같이 가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매일이라도 할 수 있다.

부를만한 노래는 마르지 않고 눈만 봐도 파트를 나누어 부를 수 있는 친한 사람들과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그냥 재미있는 노래를 부르면서 낄낄대는 시간도 좋다. 그렇게 하루를 전부 쓰고 저녁을 먹으며 소회를 푸는 시간도 좋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노래방에서 즐겁게 놀고 나오는 순간은 가장 슬프다.

중간중간 노래가 끝나고 나서 소파에 몸을 기댈 때도 무기력하다.

좋은 것이 끝나서 아쉬운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던 노랜데 싶은 데서 나오는 아쉬움이 아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무뎌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제는 되던 게 오늘은 안된다. 아니 어쩌면 이전부터 안됐는데 됐다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에 대해서 냉철해지는 건지, 남아있던 자신감마저 없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보다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점점 더 확실하게 느낀다.


노래를 하루 이틀 하던 게 아니다.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듣는 데도 익숙하다.

어떤 게 잘못되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도 않다.

어떻게 호흡이 망가졌는지, 어떻게 음을 조정해야 하는 지도 잘 안다.

하지만 연습하려 치면 연습하려 칠수록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

내 노래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점점 더 좋아하지 않게 된다.

다음에는 더 못할 것 같아 못내 슬퍼진다.


참 이상하다. 나에게 노래는 분명 ‘좋아하는 일’이다. ‘잘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뭐 운 때가 좋다면 내 목소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잘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그냥 즐기면 되는 일이다.

노래하는 데 무슨 이유가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다. 그냥 재밌으니까 시작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켠에선 이왕 좋아한다면 잘해야 한다고 몰아세운다.

왜 어정쩡한 노래실력으로 재밌어하냐고 나 자신을 한심하게 본다.

한 번 음 실수를 할 때, 한 번 가사를 절 때마다 마음속에서 비웃음이 피어오른다.

즐기려고 들어왔던 노래방은 어느샌가 완벽하게 노래를 하기 위한 시험대가 되고 만다.

시험대에서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재밌는 것이라 해도.

결국 시험대에서 내려와 내 자신의 불합격 통지를 받아 든 나는 나 자신의 실력에 대해 한탄하며 노래방을 나온다.

더할 수 없이 슬퍼진다.


왜 나는 즐기려 하는 일, 좋아하는 일에서조차 내가 얼마나 잘하는 지를 확인하는 걸까.

내가 얼마나 어정쩡하고 못하는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절망하는 걸까.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노력 속에서 또 다른 절망이 피어오른다.

‘넌 정말 니가 좋아하는 것도 어정쩡하구나. 진짜 못해.’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듣고 싶은데, 내 마음속의 비웃음이 너무 크게 들린다.


나도 노래 잘하고 싶은데.

아니 난 노래 재밌게 즐기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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