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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12. 2020

42. 처음 소설을 쓰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그만큼 써왔지만, 창작을 해온 적은 별로 없다.

책을 만든다는 일 자체가 나랑은 꽤 먼 일로 느껴졌다.

평생 책을 쓰며 먹고살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고, 글은 한 가지 세상 사는데 쓸만한 도구라고만 생각했다.

글 잘 써서 좋을 건 없으니까, 과제에서는 늘 앞서고, 취업에도 꽤 도움이 되니까.

그냥 내 글은 딱 그 정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에서는 개인적인 작품은 거의 없이 리포트와 보고 들은 감상을 적은 리뷰 정도만 쓰며 지냈다.

이런저런 대회는 있다고는 들었다, 문학 공모도 있었고, 리포트 공모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대회를 준비한다고만 하면 자신에 대한 압박감과 의심에  제대로 마무리도 못한 채 포기하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아예 도전도 안 했다.

스트레스받는 건 더 싫었고, 도망치고 나서 패배감에 절어 글을 멀리하는 건 더 싫었다.

그냥 도전하지 않고 혼자서 ‘나 글 적당히 잘 쓰네.’라는 만족만 할 수 있으면 좋았다. 글 쓰는 것마저 다른 것처럼 더 어정쩡해지고 싶진 않았다.


군에 들어가고 양성교육이 끝난 후 자대에 배치되었다.

막 임관한 장교이니만큼 사단장님과 함께 하는 행사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사단 본부에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정훈과에서 교육을 받는 일도 많았는데, 연이은 교육에 지쳐 잠시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알림판에 붙은 공고를 보게 되었다.

‘병영문학상’이라고 이름 붙은 공모전이었다. 시, 단편소설, 에세이의 부문에서 군인만을 대상으로 공모를 하고 있었다.

1등은 상금과 함께 한국문인협회에서 주는 특전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등단은 아니더라도 등단과 유사한 자격을 주는 듯했다.


문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군 생활에서 좋은 퀄리티로 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조건들보다 먼저, 왠지 그냥 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피해오던 공모였는데 무슨 바람으로 갑자기 하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다. 떨어진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군이라는 위치여서 조금 더 자신이 난 것이었을까.

그냥 다른 때와는 다르게 왠지 내 글을 써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졌다.


사단장님과 신임장교들의 회식 자리에서 사단장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일으켜 세운 뒤 뭘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기도 했고, 뭔가 다른 동기들과 같이 군인으로 내세울만한 것이 없던 나는 엉겁결에 이렇게 말했다.

“용사들에게 도전으로 모범이 될 수 있게 병영문학상에서 대상을 타 오겠습니다!”

사단장님은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나중에야 안 얘기였지만 군 이외의 자기 계발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고, 결국 내 이 포부는 그분이 종종 얘기하는 이야기감이 되었다.

결국 내가 병영문학상에 도전한다는 내용은 우리 연대와 대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다 퍼졌다.

잠깐의 궁금증과 호기는 금세 어떻게든 상을 타야만 하는 상황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일단 상을 타야 했다. 상을 타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가장 지원자가 적은 부문을 찾아야만 했다.

시와 에세이는 그 시점에서도 홈페이지에  올린 이들이 세 자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는 용사들은 물론 시간이 많은 중령급 이상들도 지원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남는 것은 A4용지 스무 장 이상의 단편소설이었다. 지금까지 시나 에세이는 꽤 써본 편이었지만, 소설은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 그래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글을 써왔으니, 스무 장 정도의 단편소설은 금세 쓰고, 퇴고도 하고 말끔하게 만들 수 있을 시간이라 생각했다.


군을 우습게 본 판단이었다.

입대하고 나서 적응할 시간도 없이 나는 사람이 부족한 다른 대대에 팔려가 생판 처음 보는 작전지역에서 훈련을 준비해야 했다.

2달의 시간은 금세 훈련을 위한 사전훈련으로 가득 차버렸고, 훈련이 없는 시간에는 행정업무와 용사 관리로 숨 쉴 틈도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타이핑을 할 기력도 남지 않고 금세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두 번의 굵직한 훈련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공모기한이 1주일 남짓 남아있었다.

그만둘까, 모니터 앞에서 수없이 고민했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또 그만둔다고 해봤자 아무도 내가 신청했단 것도 기억하지 못할게 뻔했다.

지금 쓰면 분명 다시 읽기 부끄러울만한 습작이 나오고 말 것도 자명했다.

말이 1주일이었지, 매일 일을 다하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헤아려보니 사흘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단편 소설을 쓰라니, 무리였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도 기억 못 한다 생각하고 안 했다가 사단장님이나 연대장님이 물어보고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이 싫었다.

군대란 특성상 어디 도망칠 수 있는 게 허용될 리 없으니 도망치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포기하게 되면 이번에는 연필을 다시 들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살다 보면 글을 쓰는 시간은 더욱 적어지고 힘들어질 텐데, 도망가고 포기하게 되면 다시 연필을 들고 글을 쓸 시간이 올 것 가지 않았다.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수준의 글이 되더라도 일단은 써서 제출이라도 일단 해보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최대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중간에 다시 확인하고 고쳐 쓴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결말을 향해 등장인물들이 달려가도록 두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글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느낌보단 글이 탄생하는 것을 내가 도와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퇴고를 마치고 업로드한 후 시간을 보니 마감일 10분 전이었다.

나갈 때마다 비가 내리는 우울한 남자와, 왠지 모르게 밝은 기운을 몰고 다니는 여자의 짧은 만남 이야기였다.

이상하게도, 이전까지 느끼던 더 잘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들지 않았다.

3일 만에 만든 작품이니 그렇게 잘 만들지도 못했지만, 뭔가 다 해냈다는 해방감만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만든 내 소설이니 상관없었다. 개운했다.


몇 주 뒤에 나온 결과는 ‘입선’이었다.

다른 보상 없이 펜촉 모양의 상패와 내 소설이 활자로 입력된 책이 배달되었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당연히 그도 그럴게, 대상이 우리 사단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깟 입선을 소위가 탔다고 축하해줄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모두가 나에게 기대를 보내오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나는 아무 일도 없듯 잊혀졌다.

그렇게 내 첫 공모전은 큰 성과 없이 끝났다.


하지만 내게 책으로 만들어진 첫 소설이 생겼다. 누가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전 부대에 내 글이 꽂혀있다.

누구의 평가가 어떻든간 내가 만든 인물들이 만든 이야기가 처음으로 생겼다.

뭔가 탁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남의 평가가 무서워 도망 다녔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결국 누구도 내 결과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소문은 날 수 있어도 정작 결과물이 나오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사소한 무관심을 깨닫는 게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그게 너무 우스웠다. 너무 유별나게 예민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다.

결국 내 책 하나가 생길 뿐인데.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처음으로 내 책을 얻었다.

그리고 도전해도 괜찮다는 자유감을 조금 얻었다.

그 조금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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