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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21. 2020

51. 먹고살 수 있을까?

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 동안 그 일을 할 열심은 준비되어있다.

도중에 그만두고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선택이다.

내가 하고 싶었고, 내 선택으로 포기한 것이다.

그 선택으로 내가 더욱 어정쩡해지고 또다시 실패자가 되더라도 그건 내 선택이다.

내가 나를 탓하고 다시 도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란 것은 잔혹하다.


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돈도 필요하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소중한 이들과 같이 버틸 돈이 필요하다.

꿈에서는 도망칠 수 있지만 현실에선 도망칠 수 없다.


내 선택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내 선택으로 포기한 것도 아니다.

꿈을 위한 장비를 살 돈이 없다.

그냥 매일 먹고 살 돈과 혹시 모를 비상금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중학교 시절, 통기타보단 일렉기타가 하고 싶었다.

기타는 손에 넣었지만 페달을 사기엔 돈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에 미쳐 태블릿을 샀다.

그렇지만 태블릿을 받쳐줄 괜찮은 컴퓨터가 없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대장장이를 동경해 철물점을 기웃거리기도, 혼자 책을 뒤져도 보았지만 내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쇠는 젓가락뿐이었고, 불은 가스레인지뿐이었다.


나는 고흐가 될 수 없었다.

나에게 물감을 보내줄 테오가 없었고, 오히려 내가 모은 푼돈이라도 집안의 비상금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밖에 없었다.


배고픈 예술가가 될 수 없었다.

나 혼자 배를 곯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랬겠지만 나 혼자서 배고픈 것이 아님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냥 버리고 내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늘 '먹고살 수 있느냐'였다.

많은 시간을 들여 내가 하고 싶은 꿈에 모든 것을 다 하면, 먹고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어 나는 일을 해야 했다.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었다.


이제는 돈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돈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래서 먹고살 수 있냐'였다.

먹고살 수 있을까.


그 말에 여전히 대답을 할 수 없다.

너무 오랜 시간 내 선택으로 시작하고 도망쳐왔고,

동시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왔다.

먹고살기 위해.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위해.


이제는 나 자신이 선택하게 된다.

먹고살고 싶다. 꿈도 좋지만 먹고살고 싶다.

그 생각이 나를 감싸버린지 너무 오래다.


먹고살 수 있을까.

이 생각은 내가 선택한 걸까?

아니면 환경이 만들어낸 걸까?

먹고사는데 연연하지 않고 부딪힐 수 있을까?


생각만 할 뿐 나는 오늘도 정해진 직사각형의 자리에 앉아 업무전화를 받는다.

바로 전까지 사진이 찍고 싶어 필름 카메라를 보고 있었지만 일이 너무 많아 창을 닫았다.

사진을 찍으면서는 먹고살 수 있을까?

먹고살 수 있는지 셈하는 것보다 이번엔 내 꿈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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