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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17. 2020

47. 카피캣.

내게 어렸을 적부터 가장 자신 있던 일은 '트레이싱', '따라 그리기'였다.

그림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전에도 모니터를 보고 그림을 수없이 따라 그렸다.

사실 그렇게 문제가 될 건 없다. 모든 예술적 연습은 처음엔 '트레이싱'인 것이 당연하니까.

트레이싱을 통해 실력이 늘고 자신의 그림을 찾게 된다. 음악도, 작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좀 유별난 게 있다면, 완벽하게 베끼는 것에 대한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원본과 완벽하게 똑같이 그려내고 그것에 대해 칭찬을 받을 때 느끼는 뿌듯함 말이다.

물론, 칭찬한 사람은 잘 '베낀 것'에 대해서 칭찬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열심히 뭔가 열중하는 것이 기특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못내 뿌듯해 더욱더 많은 그림을 베끼기 시작했다. 그려놓고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거 네가 그린 거니?'라고 물었을 때 부정도 하지 않았다.

칭찬을 받는 것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그 뒤로 '누군가를 완전히 속였다'라는 데서 나오는 쾌감이 자라고 있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상하게도 베끼는 것 자체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지금 학교에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학교에서 성적표를 집에 나눠줬고, 부모님의 서명을 받아 돌아오게 했다.

처음 몇 번은 내 성적표였다. 80점대 성적표를 90점대로 바꾸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가 듣기 싫었다.

섣불리 성적표를 바꾸면 더 크게 혼날 일인걸 알았다. 보통 아이면 거기서 아마 포기하고, 그냥 성적표를 들고 가겠지.

하지만 난 그 대신 도서관 컴퓨터에 앉았다. 돈을 내면 성적표 양식을 파는 곳은 그때도 많았지만 어디에도 증거를 남기기 싫었기에, 눈대중으로 성적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얄궂게도 재능을 알아버렸다.

눈대중으로 만들어낸 성적표가 누가 보아도 속을 만하게 만들어졌다. 진짜 같았다.

선생님의 서명도 몇 번 연습하니 감쪽같게 따라 할 수 있어졌다. 더 진짜 같게 하기 위해 몇 번 접어 책상에 비볐다.

지금 막 뽑은 것이 아닌, 몇 시간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있던 것처럼 살짝 해졌다.

그 날 나는 어머니의 경쾌한 서명 소리를 들으며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이후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그 일로 푼돈을 벌었다.

각을 잡고 제대로 한 것은 아니고, 조금 더 편한 왕따를 당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질 나쁜 아이들은 언제나 성적이 좋지 않았고, 그것보단 조금 좋은 성적을 원했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들도 좋은 대우와 칭찬을 원했다. 나는 그걸 실현시켜줬다.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적당한 성적으로.

시험 때면 내 자리는 생각보다 인기가 있었고, 나는 그 기대에 언제나 부응했다. 마치 암시장에서나 먹힐 모습이었다. 난 그런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분명히 부끄럽고, 혼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써먹을 만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내 꿈은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지, 뭘 똑같이 복사해서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할수록 위조에 가까운 모방 실력은 유능함이 되었다. 오히려 날로 쓰일 곳이 많았다.

법망에 걸리지 않을, 도의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만한 일이면 어떤 것이든 교묘하게 베껴서 내 능력으로 만들었다.

글도, 서무도, 단순노동도, 프로젝트도, 곤란하고 밖에 드러나선 안될 일이 많았고, 뭐든 없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필요했다.

없어진 과거의 문서를 살려내는 일도, 볼품없는 성과를 대단한 성과인 것처럼 만드는 일도 다 내 일이었다.


누군가는 그로서 징계를 피했고, 누군가는 나로 인해 성과급을 받았다.

창작이 아닌 복제, 위조가 내 일상이 되었다. 더 복제를 잘하고, 없던 것처럼, 정상처럼만 보이게 하면 무엇보다 유능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나는 대우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를 차지했다. 나를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실수를 덮기 위한 일을 했으니 그들의 실수는 내 자산이자 무기였다.

우스운 일이었다. 정작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은 이도 저도 아닌 채, 누구도 내가 뭘 하는지 모르는데, 내가 가치를 얻게 되는 건 오히려 창조의 맞은편이었다.

그리고 가장 섬뜩한 건, 그저 베껴내는 것으로 다른 이를 속이고, 대단한 것처럼 보이게 할 때, 어릴 적 성적표를 고칠 때처럼 짜릿해하는 나를 느낄 때다.


얼마나 복제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것을 있는 그대로 베꼈을까. 그리고 얼마나 그 생활에 익숙해졌을까.

복제를 하는 만큼, 남을 속이며 위조를 하는 만큼, 완벽하게 속였다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는 만큼,

내 마음에 있던 창작욕이 하나 둘, 꺼져가는 듯 해 무섭다. 베끼는 것만이 내 능력이 되는 것 같아 무섭다.

어느 순간 마음을 먹고 진짜 창작을 하자며 칼을 갈고 만든 것이 나도 모르게 다른 것을 베껴낸 것일까 두렵다.

실은, 베껴낸 것을 알고도 교묘하게 베껴서 아무도 모르고 내가 그것을 즐길까 봐 두렵다.


나는 베끼는 것을 잘한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더 많이 잘한다.

이젠 내가 하는 생각 중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게 어디선가 베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베껴댔으니. 구별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망상이었으면 좋겠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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