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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15. 2020

45. 조금만 더.

매일 빈 곳이 보인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특히나 그 빈 구멍을 채우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구멍이 없으면 될 것을, 아쉽게도 그 정도의 위인은 되지 못해 느리고 실수도 잦다.

매일 일을 시작하고 뒤를 돌아서면 구멍이 보여 다급히 땜질을 한다.

내게 아주 익숙한 업무 환경이다.


문제는 이 환경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짧은 글 하나를 쓰다가도 다시 뒤로 돌아가 부족한 부분으로 돌아가 글을 수정한다.

가끔은 단락 하나가 다 날아갈 때도 있고, 글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글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그 무너짐을 막기 위해 다시 그 앞부분을 수정한다.

그렇게 수정하고 다듬고, 글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하다 보면 원래 만들려던 글보다 더 큰 글이 완성된다.


조금만 더, 한 줄만 더 고치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수정은 어느샌가 지뢰 찾기처럼 글의 빈 곳을 찾아 때우는 작업의 연속이 된다.

글이 비대해지고 수정된 만큼 시간은 많이 걸리고 생각은 복잡해지고, 기력은 빠진다.

글을 하나 쓰고 나면 손가락 하나 들 힘도 없을 때도 왕왕 있다.

뭔가 다른 것을 할 시간도 없어져서 잠에 들어야 하는 건 빼고도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내가 하는 모든 방향이 있는 행동은 다 같다.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부족한 곳을 없애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거야.

이것만 덧붙이면 더 멋진 평가를 받을 거야.

1년 중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것 같아진다. 늘 지쳐있고,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이 되어버린다.

쫓길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것뿐인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글감을 생각할 때마다 다짐한다.

‘오늘은 조금 더 가볍게, 편안하게, 조금은 짧게 글을 써보자.’

매일 온 힘을 다해 글을 쓴다 해도 독자에게 그 감정이 전부 전달될 리 없으니 조금만 더 편하게 해 보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글의 첫머리를 쓴다.


그리고 조금 뒤에 보면 어느새인가 또 스크롤바가 생기고, 나는 스크롤바를 올려서 다시 글을 수정한다.

‘여기만 고치면 조금 더 논리가 완벽해질 것 같아.’

‘여기에 문장을 추가하면 조금 더 읽기 쉬울 것 같아.’

그런 생각은 수정을 다하고 글을 업로드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방금 그 글, 너무 못 썼는데, 다시 조금만 더 수정하자.’

결국 나는 업로드한 글을 다시 수정을 하기 시작한다. 글은 원래 생각했던 것의 두 세배 이상 몸집을 불린다.


오늘도 그렇다.

그냥 짧게 오늘은 ‘조금 더 쓰자’라는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짧은 대여섯 문장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조금의 낭만적 감성을 더해, 살짝 읊조리는 듯한 사색할만한 짧은 글을 써보고 싶었다.

왜, 책에도 그런 여백이 많은 쉬어가는 공간이 있으니 그렇게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난 오늘도 주체가 안 되는 글의 두루마리를 써내라고 말았다.

낭만적이고 사색할만한 작고 귀여운 글은 어느새 비대하고 둔한 논리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만족하기 위해 수정했는데 더 만족할 수 없어졌다.


내일은 조금 더 짧게 써보고 싶다.

마음을 조금 더 정돈하고 가볍게 써보고 싶다.

수정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고 조금만 고치고, 편안한 맘으로 글을 올리고 싶다.

하지만 글 쓰는 솜씨도 다른 이들보다 모자라 또 부족한 부분에 후다닥 달려가 글 위에 글을 바르고 말 것이다.

오늘도 그러고 후회했으면서.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솜씨도 부족한 글을 치덕치덕 덧대고 말 것이다.


봐봐라. 또 6 문장을 더 쓰고 말았다.

부족하고 욕심 많은 글쟁이가 따로 없다.

또 한 문장, 조금 더 써버렸다.

처음부터 구멍이 없는 예쁜 글을 만들면 좋을 텐데. 그럴만한 위인은 되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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