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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19. 2020

49. 확신의 인연.

여자친구를 만난 지 6년이 지났다.

대학 신입생으로 만나 여섯 해를 넘어 어느새 둘 다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첫 만남부터 한 두 해의 가벼운 만남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만큼 정말 오랫동안 서로를 좋아했다.

이젠 주변 또래 중 우리보다 연애를 길게 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언제나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인 이들은 10년이 넘었고, 대학 때 만난 친구는 여자친구만큼이나 햇수가 지났다.

딱히 서로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모르고, 딱히 왜 모이지라는 이유도 없이 그냥 모이게 되었다.

요즘 같이 병이 돌고 있는 시기만 아니면 벌써 만났어도 달에 한 번은 만났을 사람들이다.

7년이고 10년이고 빠지지 않고.


그런 우리를 보며 주변에서 가끔씩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얘기한다.

‘야 질리지 않아?’

한 사람을 그렇게 만나면 세상이 좁아진다로 시작하는 일장 관계육이 시작되는 신호다.

이 이후로 나는 만들어진 웃음과 반복되는 맞장구를 치면 된다.

이 사람과도 오래 사귈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


나와 내 연인, 내 친구들은  취향이 같지만, 또 자세하게 들춰보면 하나하나 바라보는 법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같다. 한 번 마음을 준 사람과의 일상이 깨진다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한 번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일상이 계속해서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마음이 안 맞아 서로가 부딪힐 때도 있다. 서로가 말을 걸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힘들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연 그 사람이 없는 일상이 더 상상하기 힘들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내 세상 어딘가가 잿빛이 된다.

그 사람이 없는 일상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다. 애인이던 친구던 그렇다.


새로운 게 없어. 세상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어. 나중에 후회하게 될거야.

그렇기에, 도움이랍시고 하는 이런 말은 나에게 너무 무의미한 말이다.

이미 내가 마음을 연 사람은 내 일상의 큰 축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다른 많은 비슷한 게 있다고 얘기해봤자 그 축을 손쉽게 갈아 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것을 위해, 재미를 위해, 다른 사람보다 이 사람이 나으니까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난 이 사람이 좋고, 이 사람이 있는 일상이 좋아서 만날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 여자 친구도 그런 사람이다. 내 소중한 인연들도 모두 그런 이들뿐이다.


밖에서 보면 조금 재미없어 보일 수 있을 수 있는 그런 이들의 모임이다. 실제로 매일 같은 얘기를 하며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그만큼 믿는다. 웬만한 일로는 상대방에게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확신이 있다.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사회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없으면 그들의 일상이 삐그덕거린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그들이 소중하고, 그들과의 일상이 행복하다.


그 확신의 인연이 오늘을 만든다. 10년이 넘는 우정을 만들고, 6년을 넘는 사랑을 만든다.

그리고 그 인연이 있기에 오늘도 너무 불안하고 어딘가 부족한 인생을 버틸 수 있다.

내 자신이 보기 싫을 만큼 어설프더라도, 어설픈 나라도 있어야만 행복해지는 이들이 있음을 느낀다.


여자친구와 미래를 준비한다.

동시에 오래 만난 친구들과도 미래 이야기를 한다.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여행을 가고 싶고,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

가벼운 만남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만한 미래를 그려보려고 한다.


어제까지 있던 직장 옆자리가 비어도 아무도 모르는, 매일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단순히 흥미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또 다른 교체용 친구를 찾는 오늘에서.

우리만큼은 대체 불가능한 서로의 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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