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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25. 2020

55. 그냥 쉬지를 못해.

쉬고 싶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내 오랜 바람이다.


휴일 낮 두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다.

굳이 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으로.

그러고 나서는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조깅을 하고 샤워 후 조만간 보려고 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밤늦게까지 즐기고 싶다.

잠들 때도 내일 생각 없이, '오늘은 참 알차게 즐겼구나' 만족하며 따끈한 솜 냄새를 맡으며 웃으며 자고 싶다.


자신이 어정쩡하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꿈을 너무 크게 잡아놨기에 그럴까.

제대로 쉬어본 것이 언제인지,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일을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쳐도 쉬려는 모든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휴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도대체 내가 몇 시간의 시간 허비를 한 건지 계산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책을 읽을 때면 어떻게든 요약을 하고 의미를 찾고 작법적인 배울 점을 찾으려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다 보고 시계를 올려다보며 내뱉는 한숨은 덤이다.

나에게 휴식과 휴일은 어느새 새로운 노동이 되었다.


무언가 배워서 더 완벽해지고 싶다고 되뇌던 몸부림은 어느새 내 꿈과는 관계없는 인생의 즐거운 부분마저 침범한다.

군도 전역했으니 내 인생에 더 이상 운동을 잘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실력이 성장하지 않았다며 단순한 달리기에도 금세 나를 닦달한다.

그냥 아름다운 것을 보고 소비하고 누리면 되는 여행에서도 늘 무언가 남겨야만 한다며 식사 하나 날씨 하나를 어떻게 표현할지, 무엇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그냥 쉬고 싶다. 자기 계발이고 뭐고 조금 쉬고 싶다.

결국 365일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

몸은 마치 추운 날 낡은 핸드폰처럼 순식간에 방전된다.

무엇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더 피곤해진다.

쉬어야 하는 것을 나 자신이 가장 잘 느낀다.


하지만 느끼는 것과 별개로 멈추는 것이 어렵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어정쩡함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끝없는 배움과 자기 발전 욕구의 스위치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쉬어야겠어.'라고 말하며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면서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탄식을 내뱉는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쉰다고 했으면서.


일을 취미처럼 하면 성공한다고들 한다.

난 취미와 휴식조차 일이 되었다.

이제는 그냥 푹 쉬고 싶다.

내 등 뒤의 꺼짐 스위치를 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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