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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26. 2020

56. 평범하게 잘 사는 것.

몇 번 말했지만 나는 누군가 기억하지 못할 얼굴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이왕이면 다른 이들이 기억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 그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이야.’

모두 그런 평가를 내려주고,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그렇게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요즘은 어찌 보면 완전히 반대되는 소망이 생긴다.

‘평범하게 잘 살고 싶다.’

다른 큰 욕심 없이 그냥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와 함께 가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살고 싶다.

가끔은 심야영화를 보고 새벽 늦게 들어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자고 싶고, 또 가끔은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며 여름밤 은은한 바닷바람을 맞고 싶다.

꿈이랑 상관없이 일상은 자극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다.

LP로 틀어진 잔잔한 클래식처럼 반복되지만 평범하면서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내 삶은 내가 꿈꾸는 보통과는 거리가 있다.

일을 마치고 사랑하는 이와 저녁을 먹는 것은 곧 야근하고 지친 몸을 끌고 침대에 파묻히는 것으로 바뀐다.

가족과 살 만한 작지만 아늑한 집은 혼자 사는 데나 만족할 수 있는 낡은 집으로 바뀐다.

친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임은 ‘다음에 보자’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바뀐다.

보통과는 먼데, 그게 또 어제와 같은 오늘의 삶이다. 아주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다.

그러면 결국 이게 평범한 삶인 것일까?


결국 내가 꿈꾸는 보통의 삶은 보통이 아닌 착각인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평범함이 있는데, 내게 주어진 평범함 이상의 것을 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자학적으로는 ‘주제넘은 평범함’을 원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참 서글프다.

의식주를 겨우 한 사람 분만 챙기고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주름이 늘고 머리가 새는 것은 너무 서글프다.

한 사람분의 의식주보다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가진 보통의 삶이 이렇게 이루기 힘들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꿈이 이루기 힘든 것은 안다. 그런데 꿈이 아닌 평범함을 조금 꿈꾸는 것조차 벅찬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게 아무래도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인가 보다.

행복함은 많이 적은 그런 평범한 일상이 주어졌나보다.


다들 그렇게 죽도록 노력하고 있어.’

현실에 냉철한 노력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래, 백 번 맞는 말씀이시다. 죽도록 노력하면 더 나은 삶.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손에 쥘 수 있을 거다. 어쩌면 그걸 넘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적은 확률로.


그저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고 싶다는 평범한 인생이 왜 죽어라 노력하는 괴로움 뒤에 따라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조차도 낮은 확률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나로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단한 것을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정말 작은 행복.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잘 보내는 것. 그걸 위해 기약 없는 괴로움을 버틴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나 자신을 안쓰럽게 만든다.


오늘도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전세방 하나 구하기 힘들다. 대출을 껴도 마찬가지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평범하게 힘든’ 일상은 나를 다시 한번 어정쩡하고 되다 만 사람으로 만든다.

평범하게 잘 사는 하루조차 기약이 없는 안쓰럽고 애매한 사람이 되고 만다.


평범하게 잘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

꿈을 이루기엔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디 부끄럽게 나태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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