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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01. 2021

62. 유작.

나는 유작을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때가 될 때마다 듣고,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 대한 애착은 더 크다.

히스 레저의 실질적인 유작인 ‘다크 나이트’는 영화 중 가장 많이 본 영화다.

유작이 커리어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당연히도 그 이상으로 훌륭한 작품이 많은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유작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진다.


더 이상 아티스트의 창작품을 만나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당연히 있다.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 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은 모두 쥐어짠 듯한 창의력의 조각들을 맛보는 것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면서도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다.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의 인생을 모두 보고 올라오는 엔드 크레디트 같아 자리를 떠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티스트들의 유작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이유는 유작이야말로  그가 작품으로 사람의 삶을 흔들었던 아티스트로서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유작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그가 어찌 되던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었다는 증거다. 아티스트로서의 시작을 했다는 증거다.

당연하게도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에 비로소 유작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그의 흔적이 남은 것이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 사람들이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작은 그가 적어도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껴 그가 세상에 없어도 그의 작품을 느끼고 싶어 남은 이들이 있다는 증거다.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작품을 준비했고, 그것을 기다리는 그의 팬이 있었다.

그 세 사실이 증거가 되어 유작은 유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마지막 작품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닌 그 작품이 그가 사람들이 사랑했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고 예술가로 남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유작은 비로소 특별해진다.

그가 이 지구에서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살았다는 묘비명이자 훈장과도 같기 때문에 나는 유작을 좋아하고, 유작을 동경한다.


나도 유작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 마음속, 내 노트 속에만 존재하는 작품과 함께 묻히는 ‘자칭’ 예술가가 되고 싶진 않다.

얼마나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는지는 상관없다. 얼마나 내 작품생활이 성공적이었는지도 상관없다.

내 작품을 봐주고 내 작품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누구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삶의 마지막 작품은 ‘유작’으로 남게 될 것이고 내 인생은 아티스트의 인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당당하게 남은 사람들이 나를 ‘아티스트’로 기억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겨우 단편소설 한 편. 세상에 냈을 뿐이다. 심지어 비매품으로 전국의 부대에만 보급되어 있다.

난 아직 아티스트로서의 삶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한 세상의 창조자로서의 삶은 아직 너무 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유작을 생각해야만 한다. 내가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을 대비해야만 한다.


세상에 내 작품을 발표해야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유작’이라는 것이 남게 될 테니까.

나의 ‘유작’이 ‘유작’으로 남게 될 준비작업을 해야만 한다.


‘당신에게는 내가 보이는가?’

오늘 들은 한 싱어송라이터가 남긴 유작의 가사다. 나는 그가 아티스트로 보인다. 아티스트로 기억된다.

나는, 내가 남길 유작은 나를 아티스트로 보이게 할까?


그렇게 보이게만 하고 싶다. 지금 펜을 잡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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