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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02. 2021

63. 장사를 못하는 현대인.

너는 장사한다고 하지 마라. 장사에 소질이 없어.’

어렸을 적 나를 찬찬히 보시면서 하시던 말씀이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긴 말이지만 요즘 들어 다시 한번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음을 느낀다.

나는 정말 장사를 못한다. 재능 이전의 문제다.


개인적으로 재능보다 위에 있는 것이 흥미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그걸 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다면, 그건 어떻게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아무리 재능이 없다 해도 너무 재미있어서 질리지도 않고 매일 하다 보면 보통 이상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재능을 확인할 수도 없다. 시도하기도 싫으니 어쩔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못 파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만든 것, 내 경험, 나 자신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잘 포장해 팔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것은 도저히 사고 파는데 대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가격을 정하고, 홍보를 하고, 흥정을 하는 모든 과정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망설이는 고객을 우리 상품으로 잡아끌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자기 멋대로인 고객의 오퍼를 최대한 받아줘야 하는 감정 소모가 아깝다.

사람과 상대해 무언가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행위 자체가 껄끄럽고 거리를 두고 싶어 진다.


제발 사달라고 비위 맞출 시간이 있다면 정말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특장점을 만들어서 안사고는 못 배기게 하면 되지.’

그런 풋내 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게 택도 없는 소리인 것은 이제 충분히 안다.

그런 특장점이 있는 상품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결국 모든 상품은 거기서 거기다. 품질은 요즘 세상에 다 거기서 거기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정말 좋은 상품 같은 건 없으니까. 아니 있다고 해도 장사를 더 잘하는 사람에 의해 뺏기고 말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장사에 한 톨의 관심도 가질 수가 없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아마 어느 회사에 가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싶어 내로라하는 마케팅 책도 읽어보고 경제학 책도 읽어봤다. 틈이 날 때마다 세상에서 장사를 어떻게 하는지 엿보려고 했다.

알고 보면 장사가 재미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에게 흰자위를 보이면서 적대하던 사람들이 우리 상품을 살 때 느끼는 쾌감을 어쩌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아무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고객의 심리를 아무리 알아봐도, 시장의 원리를 열심히 뜯어봐도 흥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내가 만든 내 창조물 이외의 것에 어떤 애착을 가질래도 가져지지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정말 장사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플랫폼이니, 공유경제니 온갖 물건을 팔기 위한 장사꾼이 되어가는데, 나는 장사에는 소질이 없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글, 자신의 그림. 자신의 것만 깎아내는 것 밖에 못한다. 그조차도 제대로 하진 못한다. 관심만 있을 뿐이지.


이 장사꾼의 세상에서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장사꾼이 되려는 노력이 언젠가 내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장인으로서 만들어낸 내 작품이 세상에 인정을 먼저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아닌 채 매일 하루 벌어먹으며 무력하게 회사에서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될까.


장사를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현대인.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세상살이의 무기가 없는 나.

이 세상 보란 듯이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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