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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03. 2021

64. 어차피 실패할 다이어리.

매일은 아니지만 작년의 절반 가량은 다이어리를 썼다.

가장 다이어리를 많이 쓴 해였다.

빈 곳도 많고, 그 날 뭘 했는지보단 뜬 구름 잡는 감상이 더 많았지만, 어찌 되었든 365일 중 160일은 다이어리를 채웠다.

내 글씨가 잔뜩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걸 보면  언제 이렇게 많은 나날을 살아왔는가 싶다.

내 기억과 감정의 단편이 종이마다 아로새겨져 있는 것을 잠시 들여다보자니 ‘나 이 정도로 뭔가 적어낼 수 있었구나’ 하는 후회 섞인 감회가 솟는다.


나는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을 연필로 적는 것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워낙에 글씨를 못쓰고 느리게 써서 종이에 직접 적는 것과 해지질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무언가를 적는다는 것은 더 좋아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날짜가 있고, 쓸 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달성해야만 하는 압박으로 느껴졌다.

365일이 꽉 내 일상으로 들어차지 않으면 ‘다이어리를 적는 습관이 실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칸은 곧 꾸준하지 못한 나에 대한 질책과 같이 느껴졌다.


몇 번 다이어리를 써보려고 해도 실제로 일주일이 가지 않고 빈칸이 뚫리는 것을 보자니, 이러려고 다이어리를 산 건가 싶은 회의감이 들어 기껏 산 1년짜리 다이어리는 한 달도 채 쓰지 않고 버려지고는 했다.

‘어차피 실패할 다이어리를 왜 써.’

매번 매번 안 그래도 실패하고 도망치는 나를 보기도 싫고, 그걸 적어두는 것도 괴로운데, 그조차도 제대로 적어두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은  괴로워,   다이어리를 적는 일은 나와는 점점  상관없는 일로 밀려났다.


이런 내가 다이어리를 다시 잡게 된 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군에서 출입 정면 통제를 내리고 2월부터 기약 없는 격리가 진행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계획했던 시험일정과 취업준비는 전부   앞을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버렸다. 거기에 업무로 직장 상사들과 이야기하는 이외에  누구와도 사회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않았다. 눈을 뜨면 부대로 출근하고 다시 퇴근해 혼자서 어제 시키고 남은 치킨을 먹었다.  때까지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우울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일 짧게 몇 줄이라도 감정을 풀어내야만 했다.

한 두 줄씩, 자기 전 가장 우울한 시간 펜으로 감정을 꾹꾹 누르고 나면 한숨과 함께 조금은 날릴 수 있었다.

매일 다이어리에 한숨을 내리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바이러스로 멈춰버린 일상도 작은 변화는 있기 마련이다.

나는 전역을 했고, 운이 좋게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직장 신입 생활은 다이어리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바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쓰면 많이 썼다고 생각할 만큼 집에 들어와서 겨우 지쳐 잠이 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12월에는 거의 하루도 다이어리를 적지 못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1년을 다 쓸 줄 알았는데 바쁜 삶과 지친 육신은 다이어리를 완성시킬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해가 지나고,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12월은 아예 텅 빈 다이어리를 열어봤다.

정돈되지 않은 글씨, 뭐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감정들, 매주 이루지 못해 반복되고 반복되는 목표들.

열심히 썼다고 썼는데, 빡빡하게 쓴다고 썼는데 그 쓴 내용조차도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뭐 이렇게 쓸 만큼 힘들었나. 피곤했나 싶기도 하고, 나 자신의 과대망상에 질리기도 했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뒤로 넘기다 보니 점점 늘어나는 빈칸이 보였다. 이상스럽게도 그 빈칸들이 차있는 칸들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분명 다이어리의 빈칸들도 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쓰기 싫어서 다이어리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쓸 수 없을 만큼 피곤했거나, 쓰겠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거나 그랬을 것이다.

일 때문에 바빠 밤 10시 넘어 퇴근을 해 다이어리고 뭐고 겨우 씻기만 하고 침대에 머리를 파묻은 때도 있었고, 토요일에 단 1분을 더 보고 싶어 헤어짐을 미루던 데이트의 추억들도 있었다. 보통 다이어리의 빈칸들을 돌이켜보면 다이어리보다 중요한 삶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내 다이어리의 빈칸은 내 즐거움과 열정과, 삶의 한 자욱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칸에 차마 담을 수 없이 많은 날이어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다이어리의 빈칸은 실패한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충실하게 살아낸 날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쓴 날들이 의미가 없던 날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내 다이어리는 처음부터 실패할 이유가 없는 다이어리였다.


왜 다이어리가 가득 찬 것만이 성공한 다이어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 삶도 그만큼 가득 차보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나는 다이어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 채웠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심이라도 있었던 걸까?

비어도 아름다운 다이어리인데, 비어도 아름다운 내 삶인데, 오히려 비어있는 날들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너무 작은 실패, 작은 공백에 매달려왔던 것만 같다. 내 삶은 어떻게 기록되던, 조금은 비어있던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일 거다.

분명히 그런 인생일 거다. 작년 1년의 빈칸들이 그렇게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으니까.


올해는 5년 치 다이어리를 샀다.

놀랍지도 않게 1월 1일부터 오늘까지 제대로 다이어리를 작성하지 못했다. 새해 정초부터 다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5년의 다이어리의 첫 며칠이 그렇게 다이어리를 잊을 만큼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그만큼 충실한 5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어떻게 되던, 이번 5년의 다이어리는 분명 의미가 있는 내 삶을 비춰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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