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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31. 2020

61. 웃음과 무표정과 불편함.

웃지 않을 때 무섭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내 얼굴의 어디가 그렇게까지 무서운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무섭다고는 하지 않고, 무섭다고들 한다. 화가 난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좋은 컨디션도 나쁜 컨디션도 아닌 어제와 같은 나인데, 왜인지 많이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고 한다.


말을 할 때 공격적이라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마치 따져 묻는 것 같다고 한다.

그냥 할 말이 생겨서 몇 마디를 하다 보면 내가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승부를 따내려고 느껴진다고들 한다.

오늘 하루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냥 잠깐 어울리고 싶어 입을 연 것뿐인데, 아무튼 그래서 자신들의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 건 내 의도가 어쨌든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좋으나 싫으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내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남들이 뭐라 하면 바꿔야겠지 어쩌겠어.

어색한 건 나도 알지만, 어색함을 이기면 다들 내 변화를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겠어?

그렇게 거울 속 내가 적응하기 힘들어도 몇 번씩 웃는 연습을 하고, 옆 사람에게 이런저런 작은 얘기를 먼저 걸어봤다.

한동안은 마치 내가 나아진 듯했다. 노력하는 만큼 내가 무섭다던 사람들도 가까이 와줬다. 이렇게 적응해 나가면 되는구나. 간단하게 바뀔 수 있구나.

아주 소소한 성취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싶어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웃어보려던 것에 질리고 말았다. 재잘거리며 이런저런 밝은 대화를 하려는 것도 같이 질려버렸다.

당연하게도 매일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할 말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온전히 자기 자신만 챙기기에도 급급할 때가 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루는 그냥 입을 다물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 날은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웃기엔 좀 피곤했다.

‘아인 씨 어디 피곤해?’

‘아인 씨 뭐 불편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다운된 거야. 보는 사람이 다 불편하다.’

그냥 조용히 내 할 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별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좀 다른 사람에 맞춰 웃어 보이던 나날을 보내다가 잠시 안 웃은 것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주변에서는 마치 내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마다 기웃거리고 서로 쑥덕댔다.

마치 웃으라 웃으라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루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조금만 조용해지면 이런 질문과 어색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오히려 웃는 게 이전보다 더욱 어색해졌다. 말하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잠이 덜 풀린 날이 있다. 그냥 그날따라 날씨가 맘에 안 드는 날일 수도 있다.

사람이 말을 하기 싫은 이유는 각자 다르고 그때 그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도 웃었으면 하나보다.

내가 그 정도로 무서운가? 뭐 엄청 공격적인 오오라라도 뿜어내고 있는 걸까?


내가 무표정해서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업무를 위해 웃는 것은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다.

남들이 얘기하는 것에는 성심성의껏 웃어줄 수 있다. 웃을만한 기분인 날은 아니지만 당연히 나와 얘기하는 사람에게는 웃어줘야지. 그 정도도 모르고 생활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오늘은 말이 좀 적은 것이고 일에 조금 더 집중해 웃는 게 적어진 것뿐이다.

그냥 그런 것뿐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안 웃는 내가 좀 많이 불편한가보다.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라고 웃으며 들어오는 선배가 있다. 매일 아침 변하지도 않으며 웃으며 들어오고, 쉴 새 없이 웃으며 동료들과 마르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속상한 게 있어도 다시 웃을 분위기를 만들겠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심히 얘기하고 다시 또 웃으며 돌아온다.

참 어떻게 저 선배는 저렇게 매일 웃을 수 있을까. 선배도 사람이니 웃기 힘든 날도, 얘기하기 힘든 날도 있을 텐데.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 선배 같은 사람들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어정쩡하게 노력해놓고 ‘잠깐 좀 그런 거 가지고 왜 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저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정말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말이 없고 웃음도 적다.

생각이 너무 많아 그 생각에 말과 표정이 못 따라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웃음에는 공백이 있고, 맞장구 뒤에는 어색한 침묵이 있다.

그리고 그 조차도 하기 힘든 날이 일주일에 몇 번은 있다. 머리와 마음이 너무 복잡해 잠시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잦은 말과 다이내믹한 표정은 내 삶을 힘들게 한다.


나에게 편한 침묵과 무표정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된다면, 불편함을 준다면 나는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습관을 다시 들여야만 하겠지.

알고 있다. 그게 싫으면 내가 사회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질리더라도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밝게 지내야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웃으면 웃을수록, 수다를 떨려면 떨수록 나는 피곤해지고, 불편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편해지는 것과 반비례해 나는 탈진과 가까워진다.


내 행복과, 타인의 행복. 내 심신의 안정과 타인의 심신의 안정이 시소처럼 오르내린다.

시소는 중앙점을 찾을 수 있는데, 나는 웃음과 무표정, 침묵과 수다 사이의 중간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웃음의 중간점을 찾는다는 게 참 우습지만. 여전히 그 중간점을 찾고 있다. 나도 편하고 사람들도 편한 무표정과 웃음의 중간점을.

나도 좀 편하게 웃어보고 싶다. 모두 같이 편한 분위기를 만들며 웃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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