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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30. 2020

60. 원하는 건 우리의 보금자리.

언제나 집은 구하기 힘들었지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집에 가까워진다기보다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매일 저녁 뉴스에는 지금껏 최고로 높은 부동산 가격을 보여준다. 누구는 투자를 해서 몇 억이 불었다고 한다.

언제 안 그랬던 적이 있었겠냐마는, 점점 부모님과 같이 있을 시간은 줄어들고 나만의 보금자리가 필요해지면서 난 도대체 어디서 살아야 하나 생각이 깊어진다.


물론 눈을 낮춘다면 못 살 곳은 없다.

일단 몸을 누일 수 있는 곳만 있다면 만족한다면 그런 사람을 위한 공간은 나라에서 꽤 많이 만들어줬다. '청년 주택' 비슷한 이름을 붙인 그런 집들 말이다.

나랑 내 옷,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빼면 남는 공간도 없는 그런 공간들이지만 아무튼 집에서의 생활에 큰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집을 구한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보금자리'를 원한다.

침대가 가장 넓은 삶의 공간이고, 식탁에서 언제 식었는지 모를 치킨을 먹으면서 '보금자리를 얻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을 수 있고, 가끔은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집에서 작게나마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릴 적 늘 꿈꾸던 나무 위 아지트처럼, 내 모든 관심사와 친한 이들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그런 보금자리를 원한다.


내가 모으는 피겨와 프라모델을 정리할만한 공간, 노래와 악기 연주를 원 없이 할만한 연습실, 그림과 조각 등이 가능한 환기가 잘되는 작업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점점 더 거창해지고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모두 충족되지는 않아도 좋다. 돌아가면 차갑게 식은 생기 없는 집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였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땅도 알아보고, 셀프 건축을 하는 방법도 알아보고 있다. 나의 또 다른 꿈이자,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같이 꾸는 꿈이다. 언젠가 가족 이상의 공동체로 같이 단지를 만들고 살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냥 아파트 살아. 돈도 안 되는 걸 왜 그래.'

이런 보금자리를 향한 내 바람을 조심스럽게 다른 이에게 말하면 열에 여덟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평생 거기 살 거냐, 관리는 어떻게 할 거냐 같은 현실적인 질문은 오히려 좋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집 관리가 또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 일을 물어봐주는 사람들은 차라리 감사하다.


하지만 보통의 결론은 돈이 아깝다는 것이다. 나중에 누구한테 팔겠냐. 돈 버리는 짓이다. 그런 원초적인 나무람이 당연하게 나온다.

참 아이러니하다. 난 나와 내 사람들의 보금자리, 내 꿈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얘기해도  '집'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돈'으로 바꿔 듣는다. 잠시 살고 목돈을 바꿔 버는 교환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계적으로 환산한다.


언제부터 집이라는 게 자신의 흔적 없이 곱게 써서 있는 그대로 가치를 보존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집은 사는 이의 손길이 닿아 사는 이가  바라보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삶의 축소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과 똑같이. 리모델링도 행여 집값에 문제 생길까 두려워하며 눈치 보는 도장 같은 집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쾌적하고 깔끔하다 해도 퇴근하고 쌀쌀하게 식어있는 내 것이 아닌 것들 위에서 잠을 청하고 싶지는 않다.

작고 어설픈 집이라도 어릴 적 책상 밑 이불을 장막 삼아 만든 아지트처럼 돌아왔을 때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만족감을 느끼며 자고 싶다.


나는 보금자리가 가지고 싶다.

그냥 집 말고 내가 활동할 근거지, 삶의 중심. 보금자리가 가지고 싶다.

집을 사는 것이 아닌 내 자리를 만드는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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