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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0. 2021

71. 풍선 같은 삶.

나는 풍선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성격부터 외견까지 모두 풍선과 다를 바 없다.


몸은 일찌감치 커지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일찌감치 배우게 되어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듬직하고, 누구보다 믿을만한 사람. 자신의 일은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 하나같이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

그리고 나도 그 평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나쁜 평가가 아니었으니까 조금 부담은 되더라도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내 모습은 아니다. 몸이 크고 말이 없을 뿐, 나는 그릇이 넓다거나 어른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과 도량은 마치 빗물에 잠시 생긴 웅덩이처럼 얕다.

괴로운 일이야 당연히 하기 싫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누구보다 싫다. 그런 상황이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다.

요리를 만들 때도 1인분 이상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다.

나를 믿어봤자 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도 못하고 신경 쓰는 것은 더욱 못한다. 나 하나 몸 건사하기도 힘든 심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내가 풍선처럼 부풀고 부풀었다. 그저 나 혼자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바람을 가진 나는 어느샌가 많은 이들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너라면 맡길 수 있어.’. ‘네가 저 사람 좀 보살펴 줘’. 가면 갈수록 많은 기대들이 쌓이고 쌓였다.

조금은 내 성격과는 별개로 노력하면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고,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노력하면 할수록 기대는 더욱 많아져 넘치기 전까지 차올랐다.

풍선이 부풀고 부풀어 더 이상 부풀수 없을 것 같이 커졌다. 더 이상은 내가 책임질 수도 없고, 다른 사람 신경을 쓸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바람을 빼고 싶다. 간단한 해결책이다. 그리고 사실 그 방법밖에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거기까지는 책임질 수 없어요., 사람 얼굴도 잘 기억 못 하고, 나에게  뭘 말해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그냥 말하면 된다. 기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그들의 기대를 밀어내면 된다. 아주 쉽다.

 그렇게 밀어내고 밀어내다보면 나를 향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기대를 쪼그라트릴 수 있다.

비로소 내 삶은 조금 더 편안한, 언젠가 터질까 불안하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부탁하는 건 들어줄 수 없다. 당신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나서 돌아오는 것도 내가 견뎌야 한다.

회사에서는 무능한 인간으로 밀려져 나가겠지,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갑자기 밀어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말로는 ‘지금껏 힘들었겠구나, 괜찮아’라고 말한다 해도 속으로는 ‘갑자기 왜 이러지?’라며 당황하고 기분 나빠할 것은 불 보듯이 뻔하다.

그리고 다시 비슷한 기대는 돌아오지 않겠지. 한 번 풍선의 바람을 빼내게 되면 도중에 멈추긴 힘들다.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것이다.

적당한 일도, 적당한 관계도 없이 정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게 될 것이다. 다시 기대를 주는 사람은 당연히도 없을 것이다.

‘자기가 그 정도도 책임 못질 것 같다면서 왜 또 해보려고 해?’ 싸늘하고 비웃음이 섞인 한마디를 듣게 되겠지.

조금만 공기를 빼려던 풍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내 구둣발에 차이는 모양새로 전락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내가 어른다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선을 그었어야 했다.

이 정도 이상은 내가 힘들다고 처음부터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세상의 기대치를 살짝 빼기에 나는 너무 많이 부풀려졌다.

더 이상 부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간혹 들지만, 지금 와서 바람을 빼려 손을 댔다가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지저분한 풍선이 되고 싶지도 않다. 될 수도 없다.

어쩌겠나. 내가 처음부터 커다란 풍선인 척 짐짓 가만히 있어 벌어진 일이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풍선같이 부풀려진 인간으로 조금만 기대를 더 버틸 수 있기를, 내가 실제로 조금이라도 질긴 풍선이고 조금이라도 사이즈가 있는 풍선이었기를 빌 수밖에 없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어른다운’ 풍선의 한계가 다가오면 나는 어떻게 될지.

마음이 펑, 요란하게 터질까. 아니면 픽 소리를 내며 꼬꾸라질지. 다가오는 기대감의 종말을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한 움큼, 내 풍선에 누군가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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