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싫다. 날 때부터 겨울이랑은 친해질 수가 없었다.
겨울의 찬 바람이 폐로 스며드는 감각이 너무 소름 끼친다.
난방을 아무리 해도 따뜻해지지 않는 손발을 비비고 있는 것은 진절머리가 난다.
비염은 겨울의 기운이 느껴질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늘 나와 함께한다. 삶의 질이 하루가 멀다 하고 뚝뚝 떨어진다.
그냥 추워서만 괴로운 것도 아니다.
춥다고 너도나도 트는 히터는 더 고역이다. 안 그래도 건조한 찬바람에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데 36도 37도 되는대로 올려놓은 열풍은 더욱 피부를 찢어지게 만든다.
결국 손이고 입술이고 코 밑이고 성한 곳이 없게 겨울 석 달을 보낸다.
내게 겨울은 인고와 고통의 시간이다.
여름은 반대로 내게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어딜 가나 습하니 코도 피부도 충분히 습기를 머금고 있어 마음도 몸도 편안해진다.
워낙 몸이 냉해서 그런지 여름에도 열이 쌓인다는 느낌은 받지를 못한다. 오히려 더위 속에서 잠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상쾌하게 느껴진다.
땀이 나도 산들바람만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지니 참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계절을 타다 보니 컨디션도 그만큼 극단적이다.
겨울에는 무슨 일을 해도 소극적이 된다. 일단 몸이 안 움직여진다. 늘 어딘가 아프고 피곤한 겨울이니 몸은 점점 더 기어들어간다.
근태에 문제가 될 정도로 눈에 띄게 쳐지진 않지만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옷을 입고 일을 하는 것처럼 불쾌하고 느릿해진다.
문제는 늘 1월은 겨울이란 것이다. 북반구여서 참 바뀔 수가 없다. 수백 년이 지나도 1월은 겨울이다. 12월도 겨울이고.
1년의 계획을 세우고 1년을 어떻게 세웠는지 차근차근 충실하게 지내야 할 시간이 겨울이다.
회사에서도 결산을 하고 1년의 방향을 정하는 시간은 당연히 겨울이다.
그리고 난 겨울에는 목줄에 매여 끌려가는 소처럼 움직인다.
내가 보기에도 참 일 못하는 것처럼 보이겠다 싶은데, 주변 이들이 아무리 나를 좋아하고 내 1년의 성과를 감안해도 부정적으로 비칠 것은 자명하다.
1년의 계획을 말하는 시간에 목이 잠기고 눈은 반쯤 감긴 채 굼뜬 인간이 있자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런 면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좀 많이 손해를 본다. 열심히 안 사는 것도 아닌데 하필 겨울이 연말연시라 '적당히 일하는 사람'이 된다.
나가 내 자신의 능력에 불만을 가지는 건 그럴 수 있는데, 내가 열심히 했는데도 적당한 사람 취급받는 건 불쾌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여름에도 손해를 보게 된다.
열심히 일할라손치면 다들 휴가를 떠난다. 그것도 대휴가다.
더워서 못살겠다며 의사결정은 미뤄지고 대표부터 신입까지 너도나도 휴가를 떠난다.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어.
결국 내 열심은 참 인정받지 못하는 계절적 특성을 가져버렸다.
아니 무슨 해산물도 아니고 내 열정이 계절적 특성을 가지는지, 새삼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내가 여름형 인간인데 보태준 사람도 없고 겨울을 싫어하라고 부추긴 사람도 없다.
그냥 평생을 여름을 좋아하고 겨울을 싫어하게 태어난 건데, 하필 북반구, 겨울이 안 그래도 혹독한 한반도에서 태어나서 여름형 인간의 장점을 까먹어 버린다.
'에이씨, 하와이 가면 일 1년 내내 잘할 수 있는데'
될 리도 없는 소리나 구시렁대며 손을 비빈다.
언제나 겨울이면 봄만 그리게 된다. 그래도 3월부터 힘을 얻으면 다들 좀 다르게 봐줄까?
'내 1년의 시작은 3월이에요!'라고 유쾌하게 말하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을 재밌고 힘차게 하고 싶다.
좀 긍정적이고 계획적으로 살고 싶다.
그니까 겨울이 싫다. 그런 여름형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