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타칭으로 ‘어벤저스’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나서 나는 일탈을 시작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다. 땡땡이다.
대학을 잘 보내는 학교라 그런지 학원에 간다는 증명이 없다면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말 그대로 샛별을 보고 나가 다시 별을 보면서 들어오는 3년이었다.
다들 그렇지만, 참 스트레스가 많은 때였다. 모두가 다 하는 공부를 하는 건데 뭐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도 모르고 학교에 매여있었다.
물론 말이 밤 10시까지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지, 정규 시간이 지나면 당직 선생님을 빼면 통제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단지 그럼에도 다들 알아서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를 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다들 땡땡이를 칠 때면 땡땡이를 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했고, 우리 반의 대부분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땡땡이를 치고 극장으로 향했다.
그 날 끝까지 반에 남아 공부한 것은 나와 한두 명의 아이뿐이었다.
땡땡이는 치지 않았다. 다들 땡땡이를 칠 때 나도 치면 눈치도 안 보이고 한 숨 돌리면서 놀 수도 있었을 텐데. 땡땡이를 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누구도 내가 땡땡이를 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으니 땡땡이를 칠 이유가 없었다. 나 같은 별난 사람에게 같이 땡땡이치자고 불러줄 사람도 없었고.
그러다 어벤저스를 만나게 됐다. 서로 그냥 점심시간에 말없이 뒤뜰 돌 탁자에 앉아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친구들. 고등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완전히 어긋난 6명.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무엇보다 편했고 소속감 또한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땡땡이가 늘어났다. 그리고 내 옆에는 꼭 누군가가 있었다.
매일 점심, 점심값을 아껴서 저축한다고 학교 뒷산을 넘어 편의점에서 공화춘 하나 먹는 게 행복했다.
저녁에는 학교 건너편 단지에 들어가 피자스쿨에서 치즈피자 하나 먹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땡땡이 한 번 한 번이 모두 추억이 되었다.
가끔은 굳이 땡땡이를 안쳐도 되는데도 땡땡이를 쳤다. 우리가 굳이 필요 없는 축제날이면 출석만 하고 바로 하교했다. 그날은 노래방에서 우리만의 축제를 즐기는 날이었다.
땡땡이를 쳐놓고 시립 도서관에 로비에 가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해도 되는 것도 때때로 그냥 학교를 벗어나서 했다.
이 친구들과 있는 게 좋았다. 오늘 저녁은 나갈 건지 물어보며 킬킬대는 게 매일의 반복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신경 써줬기에 땡땡이에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땡땡이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서로의 성적과 미래에도 관심을 가졌기에 종종 하던 땡땡이는 더 큰 추억이었다.
아마 땡땡이 한 번 치지 못했다면 난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단순한 땡땡이지만 동시에 나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 긍정이었다. 같이 움직이고 같이 책임지는 친구가 있다는 증거였다.
친구 하나 없이 곪아가는 마음을 부여잡고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한 채 한 번의 땡땡이도 치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그만큼 불행한 청춘이 없었을 것이다. 이내 불행에 짓눌려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땡땡이를 많이 쳤다. 친구들을 만난 뒤.
그리고 그게 나를 향한 따뜻한 손길이자 추억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날을 회상하면 즐겁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땡땡이를 같이 칠 수 있는 친구가 여섯이나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