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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5. 2021

76. 다시 할 수 없는 중창.

가장 청춘다웠던 기억을 뽑으면 매일을 같이 노래 부르며 지내던 중고등학교 중창단의 기억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중창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다. 매년 중창대회에 나갔고, 종종 전국대회까지 나갔다.

물론 전국대회라고 해도 개신교 내에서의 이야기지만, 교회만큼이나 중창, 합창이 활성화되어있는 종교도 없으니, 모두 그만한 실력들이 있었다. 대충 할 수 있는 대회는 아니었다. 매 대회가 언제나 진심이었다.


언제나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 매 해 봄, 당연하게 지역대회를부터 준비했다. 여름에 지역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어야만 겨울에 있는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교회에서 먹고 자며 지역대회를 준비했다.

지역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아쉽게 2등이라도 하게 되면 아쉬움을 저마다 숨기기 위해 눈이 빨개져 있곤 했다. 


전국대회에 가면 그때부터는 더 고된 강행군이 기다렸다. 연습을 하는 날이면 목에서 소리가 나오기 직전까지 노래를 불렀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누가 선창을 한다면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그 연습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냥 똑같은 노래를 수백 번 불러도 좋았다. 서로 눈빛을 보는 게 좋았다. 호흡이 맞는 게 좋았다. 


전국대회 홀에 서서 고요한 정적 속에, 수석 베이스가 눈빛으로 곡을 시작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그 선망하던 수석 베이스가 되어 눈빛으로 아이들과 템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말 한마디 입을 통해 나오진 않았지만, 멜로디와 표정, 눈빛을 통해 모든 대화가 이루어질 때 꿈속에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지금 너무 긴장한 거 같지 않아?' 

'조금만 템포를 눈치 안챌정도만 느리게 할까?' 

'내가 고개 조금 끄덕이는 대로 늦춰봐.'

서로 눈썹 움직이는 것만 보아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거의 인원의 변동이 없이 5~6년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음역에서 약하고, 어디에서 긴장하는지는 뒤돌아 있어도 알았다.

그럼에도 말없이 이루어지는 대화의 희열은 할 때마다 놀라워 서로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래하며 대화하는 순간이 무슨 초능력을 쓰고 있는 자신을 느끼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고, 유대감도 비현실적으로 끈끈하게 다져졌다. 나이가 얼마가 먹어도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중창을 하지 않을까? 대회가 끝나면 서로 그런 말을 하며 뒤풀이를 하곤 했다. 그만큼 서로 믿었고 서로를 잘 이해했다. 그리고 정말 같이 중창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은 순식간에 삶을 바꾼다. 대학에 들어가고, 한 두 사람씩 군대를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중창 멤버들은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워졌다. 간혹 모이면 피아노의 한 음만 눌러도 그때 그 시절의 노래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여전히 부를 수 있지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살아는 있겠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서로 화음을 맞추겠지. 막연히 기대만 품다 보니 벌써 8년이 흘렀다. 서로가 화음을 못 맞춘 지, 서로가 시선을 나누지 못한 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같은 교회에 여전히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1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생일 때 '축하해, 내 28년 친구.'라고 말하며 선물 하나 던져주는 게 전부다.


언젠가는 뿔뿔이 흩어질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스무 살이 되자마자 해체되기 시작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서로를 좋아하고, 그 이상으로 중창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도 중창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중창을 같이한 멤버들과 흩어지게 된 것이 현실 같지가 않다.

아직도 누구네 집에 모여서 피아노 주변에서 화음을 맞추다 세상 이야기하다, 떡볶이 시켜먹으며 즐거워할 것만 같은데, 어떤 사람은 육군 대위가 되어 최전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벌써 결혼하여 애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떤 사람은 우리와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분쟁 사이에 떨어져 갔다.


그렇게 우리의 중창은 끝이 났다. 나의 중창은 끝이 났다. 모두가 너무 빠르게 어른이 되고 너무 빠르게 사회 속에 빨려 들어가면서 끝나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중창을 하고 싶다. 펜타토닉스나 스윗소로우 같은 그룹들을 보면 '멋있다'라는 감상보다 먼저 '우리가 하면 참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중창 멤버들은, 우리는 완벽한 팀이었다. 경기도 구석 촌동네에서 그 정도 완성도 높은 중창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게 정말 엄청난 운명 같다.

그래서 더욱 다른 중창을 꾸릴 생각은 못하고 있다. 그때만큼 좋은 유대감을 가진 중창단의 일원이 될 자신이 없다. 

6년 그 이상의 유대를 가진, 모두 빛난다고 말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청춘을 함께 불태웠던 이들보다 더 나은 노래를 부를 동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마 어쩌면 이렇게 다시는 중창을 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멋들어진 중창곡을 들으면, 우리의 학생 시절을 추억할까?

나만이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불렀던 모든 곡이 아직 그들의 가슴에도 남아있으면 좋겠다.

남아있을 거다. 그렇게 많이 불렀는걸, 말도 없이 노래하면서도 수다를 떨었는걸. 여전히 서로 마주 보면 노래할 수 있는걸.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길 기대한다. 내가 만난 최고의 중창단이 다시 모이는 날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다시는 중창을 못한다고 말했던 것을 부끄럽게 철회하고 싶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화음과, 눈빛과, 몸짓의 대화를 나누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청춘이 마음속에 살아 있음을 언젠가 증명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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