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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6. 2021

77. 철이 들었네.

이런 말 하기 참 그렇지만, 친구 중에 참 철이 안 든 친구가 있었다.

늘 여자 친구가 바뀌고, 거친 말과 담배, 술이 그 애의 절친이었다.

성적은 늘 뒤에서 세는 게 편했고, 매일 오늘을 사는 게 가장 바쁜 친구였다.


'언제고 참 철이 안 들 것 같아.'

스무 살이 돼도, 서른 살이 돼도 그대로일 것 같은 친구였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스물이 넘고도 그대로 변하지 않는 밝은 친구였다.

물론 그 아이의 안은 그렇게 밝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가정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고, 나름대로 그걸 떨쳐내려고 노력도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남들 모다 먼저 닥친 팍팍한 세상살이를 마주하기에 그 아이는 너무 어렸고, 힘들 때가 너무 많아 오히려 현실에 도망치는 일에 급급했다.

마치 현실은 그에게 철이 들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 그 친구는 해가 지나도 늘 한결 같이 철이 없었다.


나는 대학에 가게 되었고, 그 친구는 일을 얻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느 학생 시절 친구들과 같이 소식이 뜸해졌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 기억 속에서 늘 '철없던 친구, 언제나 생각하면 조금은 안타까운 친구'로 남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까, 몇 개월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다. 늘 염색과 파마를 포기하지 않던 친구는 까맣고 제법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그의 멋쩍은 미소, 그리고 조금은 헐렁한 후드티였다.

"야, 미안하다. 내가 일요일에도 일을 해서 도저히 만나지를 못했네."

제법 피곤한 얼굴은 한 아이는 툭, 사과를 하기 시작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어느 공장에서 매일 밤낮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세상 사는 게 이런 거 아니겠냐. 다들 건강하게 살기가 많이 힘들더라."

그는 담배를 새로 사서 탁탁, 치다가 말고 나를 보더니 다시 담배를 집어넣었다.

"예전부터 너 담배, 별로 안 좋아했는데. 미안하다."


그 아이는 참 많이 바뀌었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많이 배려가 늘었고, 많이 어른다워졌다. 철이 많이 들었다. 

그는 이제 자신 혼자는 못 살 것 같이 위태롭고 철없는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훌륭한 어른이었다. 

참 대견했다. 늘 뭐하고 사는지 걱정하며 전화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친구의 등은 넓어졌다.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아릿해졌다.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마치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 아이의 바뀐 이름과 같이 어딘가로 가라앉아버린 것 같았다.

내가 참 배려가 없는 것일까. 그냥 대견해하고 친구의 성장을 기뻐해 주면 되는데,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나와 함께 있던 추억을 찾아보려고 기웃대고만 있는 듯하다.

나랑 알던 내 친구,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철없는 내 친구. 그런 친구가 없어져서 못내 섭섭한 것만 같았다.

하나하나 같이 이야기를 나눌, 오늘의 이야기를 가식 없이 나누며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멀어진 듯해서 아쉬웠던 것 같다.


어쩌면 나만 아직 철이 안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가 철이 든 것을 인정하기 싫을 만큼 나는 아직 어릴 적의 기억을 손에 쥐고만 있나 보다.

모두 앞서 나가고 있는데, 내 친구들도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나이와 수염만 늘어간 어린아이인 채 경기도 한 마을 편의점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그 아이가 많이 외로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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