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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7. 2021

78. 자존감과 자신감 사이

자존감은 한없이 낮은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선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재능은 어정쩡하기 그지없어서 내가 한 결과물은 다 맘에 들지 않는다.

뭐만 하면 먼저 사과하고,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일을 하고 메일을 보내면 그때부터 불안함에 맘을 계속 졸이게 된다. 차라리 잘못했다고 지적을 받으면 마음이 편하다. 잘못했을 것 같았으니까.

늘 자신이 잘못되었을 것 같고, 나 말고 모두가 잘하는 것 같다. 덕분에 항상 우울하고 외롭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시에 자신감은 높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만든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의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은 등줄기부터 화가 올라온다. 싸우기가 싫어 입을 다물곤 하지만, 집으로 돌아는 길에 몇 번씩 곱씹으며 기분 나빠한다.

내가 이끄는 프로젝트가 망가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무슨 자신감이야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내가 참여하는 일의 옳음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강하다. 나에 대한 고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자존감과 자신감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자신감이 너무 강하니 내 일에 대한 실패와 개입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 그만한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깐깐한 고집을 부려도 될만한, '나 잘났다'는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맞는 자존감이 전혀 없다. 무언가를 신나고 즐겁게 해보려고 해도 다른 내가 나를 막는다. 다른 사람과 협업해 더 큰 성과를 내려다가도 매사에 나를 의심하는 내가 어깃장을 놓는다.

'네가 그걸 섣불리 하는 바람에 다들 힘들어지잖아.'

'누가 좋아한다고 그렇게 판을 벌려?'

자아비판이 아닌 자아 비난이 늘 일어난다.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고, 내가 하는 일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생각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자신감이라도 없어서 일이라도 벌이지 않았으면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우울한 한 사람으로 살아갔을 거다. 그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싫어할 것이라며 반 발 물러나 우울해진 사이에 다시 다른 내가 나를 채찍질한다. 


'그렇게 멈춰 있을 거야? 그렇게 한심한 사람으로 있을 거야?'

'지금 네 아이디어는 분명히 좋은 아이디어라니까.'


이러니 나는 하루하루를 그저 우울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매번 꿈을 꾸고 다시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믿고 일을 벌이고만 만다. 

분명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이번에도 확신한다. 그리고 다시 자존감이 낮은 내가 등장할 시기다.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꽤 위태위태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안다.

우울하게 하루를 그냥 푹 쉬는 것도, 일에 미쳐서 즐겁게 집중하는 것도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낮은 자존감과 높은 자신감 사이에서 매일매일 몇 시간마다 방황한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욱 힘들다. 눈 앞의 내가 자신감 있는 나인지, 자존감 없는 나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인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고 함께 감정을 소모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다시금 자존감이 낮아진다.


악순환을 끊을 수가 없다.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무엇이 나를 더 괴롭히고 있는 나인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내가 되는 것이 좋겠지만, 자존감이 없는 나를 도저히 끊어버릴 수가 없다. 

가만히 관심 두지 않고 자존감 없는 나를 무시하면 사라질까? 하지만 내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다.


오늘도 참 고민이 많다. 그리고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고민을 한다.

양 옆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두 명의 나를 피하고 싶어 귀를 막는다.

내가 생각해도 참 손이 많이 가고 혼란스러운 인간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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