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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8. 2021

79. 대단하지만 보잘것없는.

난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한테 물어도 '아, 그 사람!'하고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아니면 그런 작품을 만들 사람이 전혀 없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죽으면 내 죽음보다 먼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나의 작품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렇게 대단한 걸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번까지는 뭐 구세주니, 기대주니 그런 얘기를 하더니.'

모순적인 희망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도 안다. 가끔 내 생각은 알기 힘들다는 것.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바란다. 나는 대단하고 동시에 아주 보잘것없게 살고 싶다.


뭐 무척 숭고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 능력도 없다.

지구를 살린다거나,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거나,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인다거나.

물론 좋은 일인 건 안다. 실제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어떤 원리로 할 수 있을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힌다.


내가 정말 대단해진다 해도 영원히 이해 못할 그 ‘대단한 것’들을 나는 얘기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지금부터 내가 말하면 다른 이를 변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먼저 깨어있는 사람이 말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먼저 느꼈으니 다들 이 ‘대단한 것’에 동참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난 깨어있지 않다. 다른 이들과 그렇게 크게 다를 바 없는 지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교육을 받았다.

내가 나은 것이라고는 남과 조금 다르게 보는 시각, 그걸 그려낼 수 있는 손가락뿐이다.

내가 정말 ‘대단한 것’을 남들에게 퍼트리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내가 그 ‘대단한 것’을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게 정말 세상을 살리는 일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권유하고 다닐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살짝은 비틀리고 많이 우울한 감성으로 세상을 그릴뿐이다.

내 작품으로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내가 살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있어서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쉴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가장 행복하고, 할 일을 다했다고 만족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솔직하게 조금 더 잘 살고, 많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전부다.


이해하지 않은 것을 이해한 마냥 의미를 잔뜩 덧붙이고 명분으로 방패를 둘러 작품을 만드는 삶을 사는 것은 사절이다

솔직하게 내가 이해한 것 위에 상상한 세상을 얹어서 나를 그대로 담아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솔직하게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이해한 대로만 행동하고 싶다.

매일 성실하게 분리수거를 하거나, 설거지할 때 조금 덜 세제를 쓰거나. 길 가는 길에 있는 홈리스 잡지 판매원의 잡지를 산다던가.

그냥 그런 사소하고 보잘것없지만 내가 이해하는 정도의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고, 나름대로 대단한 삶을 살고 싶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을 구하고도 싶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하지 못할 것을 강요하는 삶이 아니라 말이다.


내 대단한 꿈과 별개로 세상을 살 때는 사소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길에 떨어져 있는 꽁초를 줍는 별 것 아닌 삶을 살고 싶다. 부모님과 손잡고 식사하러 다니는 사소한 삶을 살고 싶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다른 이의 얼굴에 뿌리며 정치 개혁을 외치는 대단한 무리나 부모님께 욕설을 내뱉으며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는 숭고한 사람은 사양이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답고 사소하며 대단하면서 보잘것없는 삶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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