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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Jan 19. 2021

80. 흔치 않은 커플.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것은 일상이다.

다른 사람 아닌 한 여성을 위해서 시간을 비우고 살아온 시간이 일수로 2200일이 넘었다.

어느 노래에는 '천일동안' 이별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두 배의 시간을 서로를 향해 살았다.


‘정말 흔치 않은 커플이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

아니 어느 때부터 그런 얘기만 듣는다. 뭐 예쁘게 사귄다. 행복해 보인다. 그런 말이 아닌 ‘흔치 않다.’라는 이야기만 듣는다.


뭐가 그렇게 흔치 않은 걸까.

2000일이나 사귄 것이 그렇게나 흔치 않은 일일까?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이미 그 이전부터 그런 소리를 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돌이켜보면 사귀고 나서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 안 사귀냐?’

그런 질문이 1년이 지나고부터 나왔다.

‘사람 많이 안 만나 보면 나중에 후회해.’

진지한 얼굴로 그런 조언을 하는 사람의 수는 너무 많아 세 보지도 못했다.

이쯤 되면 서로 다른 사람 만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왕왕 있었다.

대놓고 같이 미팅이나 헌팅을 가자고 하는 선배도 있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관계가 만났다 사라진다는 것은 사람 따라 다르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 빠르게 헤어지게 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사랑이 휘발성 물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장 첫 순간이 짜릿하고 뒤로 가면 갈수록 그 색이 퇴색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말하며 잠시의 달콤함만 즐기면 서로 볼 일 없듯 정리해도 된다고 하는 듯한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이 빨리 식는 사람도 있는 거고, 사랑이 오래가는 사람도 있는 거고, 늘 봐도 새로운 사람이 있는 거고, 어느 날 봤더니 너무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사랑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랑에 맞추어 그 사랑에 맞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마치 모두가 다 같은 짧은 사랑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그 인식만큼은 아무래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랑의 경험이 단지 다음 사랑을 위한 좋은 공부였다는 느낌으로 치부하는 것은 더 최악이다.

안 귀한 사랑은 없다.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건 모두 귀한 사랑이오, 추억이다. 그런데 그 귀한 추억을 술 거리 안주로 써먹고 툭툭 털어내고 좋은 경험이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지금 여자 친구는 어떻냐고 캐묻고, 마치 인생을 허비하는 것처럼 ‘야, 그 정도면 볼 거 다 봤는데, 네가 아까워서 하는 말이니까 다른 사람 만나.’라고 툭 미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바로 자리를 뜨고 싶다.

당신의 사랑은 그럴 수 있지만, 내 사랑은 그럴 수 없다.라고 외치고 싶다.


순간순간 허탈한 생각도 든다. ‘우리가 그렇게 흔치 않은 커플인가?’

세상에는 다 그렇게 잠깐 만나고 잠시의 휘발성 짙은 사랑을 끝내고 나면 헤어지는 커플들만 있는 걸까?

그냥 몇 번을 만나도 좋고, 말은 없고 좀 서툴러도 손만 잡고 길을 걸어도 괜찮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없는 걸까?

내가 별종인 건 좋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인 건 좋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별종인 것처럼 취급받는 건 거부감이 든다.

단지, 나는 한순간에 타오르고 사라지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것뿐인데, ‘흔치 않은 커플’이라는 이름으로 툭 넘겨지고 자신들의 사랑 방식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나는 그냥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퍼지는 은은한 사랑. 지금만 같아서는 앞으로 2000일이 돼도, 다시 거기에 2000일이 돼도 좋을 거다.

폭죽같이 팡팡 터지는 사랑이거나, 강렬하게 몰아치는 태풍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늘 옆에 있는 이불 같은 사랑을 할 뿐이다. 언제나 옆에 없으면 잠을 설치게 되는 그런 사랑.

세상이 전부 알코올이나 불꽃같은 사랑만을 하고, 이런 사랑을 우리 둘만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냥 우리의 사랑을 할 뿐이다.

흔치 않은 커플이 아니다. 보통의 지극히 보통의 사랑을 하는 커플이다.


그러니 제발 우리가 결정하기 전에 우리의 인생을 ‘흔치 않고, 특이하고, 지겨울 때가 된’ 그런 사랑을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정말로 역하다고 할 정도로 싫다.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우리만 규정할 수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만 보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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