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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Feb 01. 2021

93. 추천이 강요가 되는 것을 알지만.

추천이 강요가 되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내가 본 좋은 작품을 공유하고 싶다.

전혀 관심도 없는 것을 추천받는 입장이 썩 좋지 않을 것을 알아 조심스럽지만, 좋은 것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누구는 나만 알고 보고 싶다고도 하지만, 나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쉬운 점이 있으면 아쉬운 대로, 좋은 점이 있으면 좋은 대로. 대사도 같이 이야기해보고 좋은 장면도 손꼽아보고 같이 테이블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누군가와 즐거웠던 감상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가끔은 너무 과하게 추천해 질려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이러다 아예 안 보게 되면 어쩔까 싶다. 더 심해져 나랑도 아예 보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자신만의 인생작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취향 존중은 감상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의 덕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꼽게 즐거웠던 작품이 있다면 꼭 봐줬으면 한다. 취향은 아닐 수 있지만 좋은 추억은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눈치를 보면서도 또 추천한다.

모두가 같이 봐주었으면 한다.


사실 정말 좋은 작품이면 추천보다도 같이 보고 싶다. 문자 그대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고 싶다.

그래서 정말 아끼는 사람이라면 같이 어떻게든 짬을 내서 본 적도 많다. 여자친구랑은 좋아하는 작품을 카페에서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군에 있어 여자친구를 잘 못 만날 때는 스카이프를 켜 두고 타이밍을 맞추어 같이 보던 시기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가서 50화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을 친구들과 다 본 것은 평생 남을 추억 중 하나다.

그냥 조용하게 보는 게 어디가 덧나서 그걸 그렇게 같이 보려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얼굴을 보며 바로 봤던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순간순간이 너무 혼자서 모니터 앞에서 보는 것보다 더 오래 남는 추억이 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구보다 개인적인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개인의 관점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좋은 작품만 보면 자기 옆에 두고 같이 보고 싶어 한다.

그게 강요가 되어 부담이 될까 봐 상대의 눈치를 전전긍긍 보면서도 같이 보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안 볼 걸 아는 사람이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럼에도  한 번씩 잊을만하면 권유한다.

‘정말 할 일 없을 때라도 보면 좋겠어.’ 라면서 살짝 작품 쪽으로 민다. 나를 밀어내지 않을까 소심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작품을 추천한다.

어떻게 보면 집요할 정도로 추천을 한다. 나 자신이 민폐라고도 생각될 정도로 꾸준하다. 심지어 작품 감상의 풀이 넓으니, 추천작품도 무궁무진하다. 모든 사람에게 맞을만한 추천작품을 골라서 기억하고 맞추어 추천을 한다. 바람은 그저 ‘언젠가라도 한 번 봐주는 것’ 뿐이다.


내가 추억을 공유하는데도 감정을 공유하는데도 서투른 사람이라 그렇다.

가장 친한 이에게도 감정을 공유하는데 서투니 추억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하지만 분명히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있고, 조금 다른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은 있다.

그 사람과 어떻게든 추억을 쌓고 싶어 진다. 시간은 흘러가고 언젠가 내가 저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도 생길 텐데, 또 어느 추억 하나 없이 가까운 이와 멀어지기 싫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감정을 바로 드러내지 않아도 같이 간접적으로나마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도구로 작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대신 표현해 줄 작품과 함께라면 조금이라도 쉽게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렇게 이야기한 순간이, 운때가 좋아 같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면 작품을 같이 본 그 순간이 내게 참 만들기 힘든 ‘추억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라 강요가 될까 봐 무서우면서도 지겹게 추천을 한다.

나만의 추억 쌓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작품이 없이도 내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힘든 하루로 추억을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로 재미있는 날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너무나도 서툴다. ‘나 많이 힘들다.’라는 말 대신에 작품 하나를 말하고 싶은 사람 앞에 밀어놓는 게 최선이다.

부디 강요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좋아할까라는 서투르고 어색한 기대감과 함께.

행복하게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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