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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Z Jul 01. 2024

영원한 찰나

<타이타닉> 속 모네(Claude Monet)

“모네군요.”

“모네를 알아요?”

“물론이죠. 색의 조화를 봐요. 정말 대단하죠?”

“맞아요. 정말 비범하죠.”


영화 <타이타닉>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가치를 알아본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그들의 찰나와 같이 짧은 사랑이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는지,

어떻게 로즈가 찰나 같은 순간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었는지,

왜 한 장의 누드 스케치만을 간직한 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는지와 같은 의문들에 대한 해답은,

로즈와 잭이 모네의 그림을 사랑했다는 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수련>, 1914-1926, 캔버스에 유화, 세 개의 패널 (MoMA)


모네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순수하게 보이는 것 그대로, 순간의 인상을 담으려했다.

19세기 과학, 특히 광학의 발달로 빛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그와 더불어 카메라 기술의 발전으로 빛을 통해 사물을 본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에 따라 표현의 대상이 사물에서 빛으로 옮겨가며

그림의 소재는 영원과 이상보다 현세와 찰나로 변화하였다.

 

누드에 대한 관점 또한,

미의 총화이자 아름다움의 산물이라는 관념적 시선에서

관능, 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실체적 시선으로 변화하였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2~1863, 캔버스에 유채, 208x264cm


이에 대해 미술사회학자 하우저는

“인상파는 작품에 묘사된 것이 곧 현실 자체와 같다는 착각을 자연주의보다 덜 일으킨다.

인상파는 대상의 그런 환영 대신에 대상의 요소들을 보여주며,

경험의 전체적인 상이 아니라 경험을 이루는 구성 재료들을 보여준다.”라고 하였고,

이는 세계는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의식과

세계의 모든 현상은 어쩌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현실이란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요,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이다. 라는

근대인의 실존의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철저한 계산과 계획에 따라 그려진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본 장면, 스냅사진으로 포착된 것 같은 인상을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위한 표현의 수단은 거침없는 붓터치로, 대상의 디테일은 뭉개지고 정확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클로드 모네, <Parc de Monceun>, 1878,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과감한 붓칠로 뭉개진 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을 감상하는 이들은 상당한 몰입감을 느껴 빠져드는데

이는 자신이 본 ‘대상’의 절대성과 영속성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찰나의 빛과 인상, 그로부터 자신이 느낀 감각과 감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로즈는 기울어진 가세로 인해 부유한 약혼자 칼과의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칼은 돈과 명예 등의 사회적 가치와 영원성을 추구하며 모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족의 요구와 사회적 관습, 세속적 가치로 인해

자신의 감정, 의지와는 관계없는 

영원히 결정되어버린 인생을 비관하며 타이타닉에 탑승하였고,

그 대가로 대양의 심장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 받는다.



그렇게 탑승한 타이타닉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자유롭고 낭만적이며 모네의 가치를 알아본 예술가 잭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즈는 잭과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며 비로소 자신의 빛을 되찾고,

자신의 인생을 옭아매는 족쇄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러던 도중 그들이 타고 있던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고

잭은 로즈를 구하고서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다.

구조된 로즈의 주머니에는 대양의 심장이 있었고,

로즈는 다이아몬드를 보며 평생 타이타닉에서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수십년의 시간이 지난 후 대양의 심장과 타이타닉을 찾기 위한 탐사대가

잭이 그렸던 로즈의 누드 스케치를 발견했다는 것이 알려졌고,

로즈는 자신이 스케치의 대상이며 대양의 심장의 소유자였다며 스케치를 받아 간직한 채,

가지고 있던 대양의 심장을 바다 속으로 던져 보낸다.




정혼자와의 결혼, 그로 인해 결정되어 버린 남은 모든 인생,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영원성, 이상적, 절대적인 사회적 가치를 의미하는 반면


로즈와 잭의 사랑, 누드 스케치는

현재의 순간과 순수한 아름다움,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의 추구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잭과 로즈는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다.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나, 인상과 감정은 영원할 수 있기에 평생 기억할 수 있었고

영구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보다 순간의 아름다움과 감정을 소중하게 여겼기에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스케치만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영원한 빛이란 없다. 그러나 그 빛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있다.

찰나의 빛을 포착하고 느끼며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인상과 감상을 간직한다면,

나에게 있어 그 빛의 인상은 영원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반짝임보다 더 길고 아름답게 기억될 빛의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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