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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올로스 Nov 26. 2018

마케터로 산다는 것

(마케터를 꿈꾸고, 마케터로 성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

마케팅이란 무엇일까?

이미 필자가 이전에 "LG는 정말 마케팅을 못하는 걸까?(https://brunch.co.kr/@aiolos/4)"에서 밝혔듯 "시간의 변화"란 개념이 빠진 상태로 마케팅이 정의되는 순간, 그 정의는 이미 틀린 정의가 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생각을 세계적 경영 사상가인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무용 지식"이란 신조어를 만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른 지식은 그렇다  쳐도, 수년 전 자신이 의대에서 배운, 시대에 뒤쳐진 사실에 의존하는 의사들 때문에 오늘날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음에 이르겠는가? 어제의 일시적 유행에 근거해 세워 놓은 마케팅 전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파산에 이르겠는가?" (『부의 미래』p.170)

▲ 20세기에 쓰이던 의료지식을 그대로 현재의 환자에 적용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쓰이던 마케팅 지식을 그대로 현재의 시장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맹장 수술을 하는데, 의사 본인이 배운 외과 수술 기법이 개복 수술밖에 없으니, 회복이 빠른 복강경 수술 대신 개복을 해서 고통과 위험을 환자에게 넘기는 것. 마찬가지로 십 수년 전 마케팅 서적을 배우고, 오늘날 그것이 진리인양 떠들다가 기업과 그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며, 앨빈 토플러는 지식이 시간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Update 되고, 또한 그래야만 함을 혜안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사회생활 10년 차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마케터를 꿈꾸는 많은 이들을 만나 보았고, 신입사원을 면접 보기도 또한 받아 키워 보았다. 또한 마케팅 팀을 대하는 유관 부서도 많이 접해보았다. 내 10년 치 경험이 마케터를 꿈꾸고 마케팅과 관련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몇 글자 적어 보겠다. 


§ 마케팅을 공부한다고? 그까짓 거 대충 그냥 하면 되지.

 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하며 특강을 들었다. 한 연사가 

"마케팅은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신문만 보면서 대충 하면 돼요."

약 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 한 그를 보며, 나는 공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보통 경영학부에서는 세부 전공을 6개 정도로 나누어 놓는다. "재무, 회계, 마케팅, 생산관리, 경영정보시스템, 인사관리" 이 중 재무, 회계는 수학 쪽이니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포기를 하고, 생산관리는 공장에 가서 일하기 싫고, 경영정보시스템은 컴퓨터와 가까운 공대 쪽이니 포기하고, 인사관리는 노무사 시험 보는 친구들이나 듣는 것 같으니 자격증도 없고 책은 컬러풀하고 잡지 같으니 뭔가 팬시(Fancy) 하고 있어 보이니 마케팅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 정말 창의성이 뛰어난 친구들은 광고 공모전, 광고 동아리 등에 참여해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고 현재도 국내 최고의 광고회사에서 "프로"라는 직함으로 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극소수였고 대부분이 가장 만만해 보이고, 아기자기한 광고 정도 만드는 것 같으니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국에 경영학과가 없는 학교는 없으며,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로 이도 저도 아닌 "대다수"를 맡고 있는 학생은 넘친다. "문송 합니다"인 현 상황에서 대기업도 마케팅 부서의 신입 TO는 10명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TO가 있으면 다행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로 취준생이 뽑힐 확률은 과연 몇 퍼센트일까?


§ 마케터가 쉽게 보이는 이유?!

 외부에서 보는 마케터 직무는 고고하게 앉아서 사무를 보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박수를 받고, 광고 대행사에 일을 배분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한 직장인"의 표본이다.

 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네가 시장에 나가봤어?", "네가 시장을 알아?"다.  현장을 모르고 장표만 만들면서 입으로 모든 것을 풀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SNS 마케팅의 경우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를 슬렁 슬렁 웹서핑을 하면서 "쉽게" 돈을 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위의 질투를 역으로 설명해 보면, 웹 서핑하면서 (시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돈 버는 것 나도 할 수 있어 보이고, 쉬워 보이니 모두가 다 마케터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부서가 혼자 단독으로 하는 일은 절대 없다.(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유관 부서와 절대적으로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다. 회사의 성패는 "영업"이익에 달려있다. 절대 "마케팅"이익에 달려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 부서는 돈을 쓰는 부서이지 돈을 벌어오는 부서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마케터란?

§나는 마케터가 되기 싫었다. 

앞서 필자가 경영학부 생일 때, 필자는 재무를 최우선 순위로, 마케팅을 최하위에 두고 공부를 하였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공대 출신들이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배우는데,  경영학도로서 "비즈니스 아이템"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2. 재무는 자격증도 있고, 금융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아이템"이 되기 충분하였다. 

 3. 금융 산업(은행, 보험, 카드, 증권 등)에서는 경영학 전공 출신이 유리했다.


위 이유를 수식화 해 보면, 


컴퓨터 공학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프로그램, 하드웨어

화학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화장품, 의약품

기계공학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자동차, 드론.... 

재무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금융상품 (은행, 보험)

"X (Item)"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X (Item)"


나에게는 그 무엇인 X(Item)가 없었다. 무엇인가를 시장에 팔아야 하는데, 당최 팔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학생 때부터 광고 천재처럼 마케팅 아이디어가 샘솟지도 않았다. 취업시장에서 내가 마케터로서 뽑힐 확률은 없었다. 

 그런 필자가 어떻게 마케터가 될 수 있었을까??  모 은행 최종면접을 앞두고, 그전에 모 기업 디스플레이 제조사에 합격이 발표되었다. 당시  은행권 잡 쉐어링 여파와 디스플레이 업계 호황으로 연봉의 차이가 있었고, 해외출장을 자주 간다는 말에 주저 없이 대기업을 선택하였다.(은행 창구에 계속 앉아있을 자신도 없었다.) 입사 후 면접관이었던 나의 상사의 후기와 회사의 방침을 보니 내가 합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위에서 설명한 "X (Item) +  마케팅 = 시장성 있는 X (Item)" 공식이 전혀 틀리 지 않았다. X(Item)은 디스플레이 패널이었는데, 어차피 사업 아이템은 디스플레이 회사에서 가르칠 것이고(대학에서 가르칠 수도 없다) + 마케팅 (사실상 해외 영업 및 트렌드 파악) 능력을 탑재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 해외 은행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외국인 상대 영업력, 해외 시장분석의 경험이 다른 지원자와의 차별 점 있었는 듯하다. 

 그렇게 대기업 배찌를 차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엄청난 업무가 나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기라고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꼬마전구 이외에 만져 본 적도 없는 나에게 국정원에서 보호하는 국가 기관 산업기술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 기술을 공부하고 판매하라는 미션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장의 동향, 경쟁사 분석. 기술 트렌드를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기술의 어려움 덕분에 입사 동기는 1년이 지나니 사라졌다. 공기업으로 이직한 동기, 마케팅 석사를 꿈꾸며 대학원을 진학한 동기를 보며 이 길이 맞나 수만 번도 스스로에게 더 물었던 것 같다. 다행히 주위에 좋은 엔지니어 분들이 많아서 디스플레이 구동원리를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고, 관련 서적을 공부하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을 실천하며 버텼다. (정말 개가 풍월을 읊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기술이 보이니 마케팅이 무엇인지 잘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B2B에서 B2C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며, 마케터로서의 나름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기술 중 OLED 기술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LED 패널과 구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더 깊은 명암비(밝음과 어두움의 차이)를 잘 나타낼 수 있다. 그 차이를 설명하고자 "블랙보다 더 깊은 블랙"이라는 카피를 쓰기 시작했으며, 하만 카돈 스피커가 달린 프리미엄 모니터가 나오자 "귀로 보는 모니터"라는 카피를 대중에 알리기 시작했다. 보도 기사 런칭쇼 기자 간담회를 추진하면서 대중을 상대하는 능력도 많이 키워진 시기였다. 


§ 제품을 모르고 마케팅을 한다? 

▲ SNS는 마케팅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필자는 분명 운 좋게도 Item(제품)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그 X(Item)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보이니 그와 관련된 그래픽 카드(GPU)가 보이기 시작했고, 블록체인과 같이 연관된 기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로슈머(Producer + Consumer)"라는 단어를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p.225)에서 사용하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말로 "덕후", "얼리어답터"라는 친구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제품에 대해서 마케터, 생산자보다 잘 알고 자신의 의견을 인터넷에 올리며, 오피니언 리더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 사원들을 보면 아쉬움이 매우 많이 남는다. 신입사원에게 인문학적 혜안과 시장을 모두 읽는 통찰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케팅 부서에 지원을 했으면 제품을 탐구하고, 제품의 강점과 단점을 공부하려는 노력이 없어서는 절대 안된다.  제품에 대한 공부, 시장에 대한 분석 없이,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없이, 본인 인스타그램을 꾸미듯 회사 SNS 계정을 꾸미려고 한다. 제품의 강점은 누군가 거저 알려주기 바라고, 애꿎은 디자이너만 괴롭혀서 뭔가 있어 보이는 창작물을 가져오기 바란다. 

 고객은 제품(혹은 서비스)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다. 물론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수도 없지만, 왜 사야 하는지 당위성은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마케터가 할 일 중 하나이지 않을까? 특히 비슷한 제품들이 많은 레드오션 속에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왜 우리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입사원들의 대다수는 마케팅이라 하면 4P Mix(Price, Product, Place, Promotion)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중 Promotion에만 치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것도 잡지, SNS 특히 셀럽 광고에 특별히 유별나게 집착을 한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사진에, 누군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 놓은 카피를 갖고 애꿎은 디자이너를 불러서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케터라는 직함을 뺏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한다.

 마케팅 4P Mix 가 마케팅의 기본이라 생각하면, 왜 나머지 그런 Price가 되었는지, Product Planing 시 왜 그런 것을 기획했는지, 어떤 유통, 광고 채널 (Place)을 사용하면 좋을지 나아가 여론(Public Opinion)은 어떤지 보도기사(Press Release)는 어떤 식으로 나가야 하는지 개념 확장은 왜 궁리하지 않는가?? 

오로지 Promotion 중 "광고"! 그중에서도 유명인사와의 사진 촬영만이 마케팅의 전부인 듯 착각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마케터는 마케터이지 포토샵 수정 요청자가 아니다.


§ 마케터로 산다는 것

결론을 내자면, 마케터란 "마케팅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부의 미래』(p.170)에서 처럼 지금의 (마케팅) 지식은 "묘비에나 쓰일 문구"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하고, 경쟁자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나마 공통 점은 소비의 주체는 인간이고 인간을 움직이는 요소는 무한대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케터는 경제학, 심리학, 통계학, 컴퓨터 공학, 빅데이터 기술 등 다방면에 능통해야 한다. 회계사와 달리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다는 것, 어쩌면 마케팅을 정의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고, 어쩌면 텔레마케터, SNS 마케터 모두가 다 마케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마케팅을 해봤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정의가 초보적인 활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마케팅은 무엇인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꾸미는 것? 아니면 디자이너에게 오더 내리는 것?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매월 산더미처럼 쌓이는 경영, 경제, 인문 서적을 다 소화가 가능하다면, 마케터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고, 내 명함에 새겨진 세 글자 마!케!터! 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다.

마케팅을 알면 알 수록 모든 것에 가까운 학문이고, 단순히 판매 촉진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인문학에 가깝다고 조심스레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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