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양성해서 성공했다던 대만 경제! 진실은?
경제 강국! 전자 기술 강국! 한 때 일본에 이어서 전자제품 기술력의 최고라 일컬어졌던 대만. 우리에게는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양성해서 서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던 선진국가이자 우리가 한때 롤모델로 삼았던 "대만"이 우리의 인식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만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역사적 사실과 함께 정리해 보자.
필자가 어릴 적이던 1980년대만 해도 "자유중국",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대만을 불렀고, "중국"이란 국호로 적힌 나라는 세계 지도 속에는 없었다. 다만, "중공"만 있을 뿐. 1990년대 중국의 경제력의 급부상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수교를 하며, 중국이 주장해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받아들이며, "대만"과는 단교를 하게 된다.
UN 상임 이사국의 지위였던 대만! 중화민족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민족 (명, 청 시대의 보물은 국민당이 대만 섬으로 도피하며 가지고 가, 현재 대만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동시에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선진국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국가, 냉전시기 공산진영에 맞서 미국과 한국의 최우방국 임을 자부했던 대만이 자신들이 키우던 한국마저 단교를 선언하자 그들의 배신감은 하늘을 찌르며, 반한을 넘어 혐한 감정으로 남게 된다. 동 아시아에서 섬나라가 아니며, 자유진영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거는 지정학적 기대는 매우 컸음을 생각해보면 실망의 정도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현재 공식적인 외교문서에서 "자유중국",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대만"이란 단어가 간헐적으로 쓰일 뿐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를 중국이란 단어 대신 중공이란 단어를 쓰며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듯, 이제는 중화민국이란 단어 대신 대만이란 단어로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두 차례의 올림픽을 치르고, 한차례의 월드컵을 치르며 국력을 과시하는 동안 아쉽게도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는 중국의 영향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며 중화민국은 아쉽게도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에 가까울 정도로 대만은 발전된 나라였다. 이렇게 경제력이 발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17C 때부터 설명을 하자면, 현재 대만 섬은 원주민들만 살던 사실상 중앙집권 국가 권력이 닿지 않던 섬이었다. 남한의 약 1/3 정도 크기의 섬에서 동남아 원주민들이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던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 사람들이 넘어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배하고, 명나라가 멸망하며 넘어온 정성공이란 장군이 나라를 세우고, 청나라에게 넘어가고 끊임없이 침략에 시달리던 땅이었다. (지금도 타이베이 시 북쪽에 가면 홍마오청이란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홍마오청(红毛城) = 붉은 털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성이란 뜻이다.)
그렇게 원주민들은 외부인들에 의해서 사실상 식민지 시민 상태로 숨어 살거나, 노예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청나라는 청일전쟁의 폐전의 대가로 대만섬을 일본에 넘긴다. 일본은 이 섬을 빠르게 식민지화한다. 매번 식민지 주민으로 살던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주인이 등장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이란 주인은 교육도 시켜주고 철도, 도로와 같은 사회 간접 자본을 만들어주니 기존에 주인들에게 느낄 수 없는 호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물론 그 목적이 동아시아 민족의 평화와 박애 정신으로 한 것은 절대 아니다.) 곧, 조선도 일본에 강제 병합되지만, 저항의 강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앞서 네덜란드 인이 대만섬을 점령했을 당시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경제력이 꾀나 있는 땅이었다. 중국과 마주한 서쪽은 약간의 평야지대가 있는 반면, 태평양이 있는 동쪽은 3000m가 넘는 험한 지형과 해안 절벽으로 인해서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재도 동서 관통 철도는 없으며, 해안 순환도로가 주를 이룬다.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다운 도로는 터널과 같은 토목기술 발달이 갖추어진 비교적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이러나저러나 2차 대전의 영향으로 군수물자가 극도로 필요로 하던 시기 일본은 대만의 물자 수송을 위해서 동서관통 작은 길을 삽과 곡괭이를 든 인간의 노동력으로 겨우 만들어 낸다. (협곡을 파서 만든 1차선 도로가 현재 관광지로 유명한 타이루거 협곡이다.)
이후 일제가 2차 대전 패전으로 물러간 후, 중국은 우리처럼 공산당과 자유진영에 내전이 진행되며,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의 장개석 등 중국 본토인들이 대거 대만으로 건너간다.
자유진영의 국민당은 좁은 땅에 있지만, 일본의 기술력과 사회 인프라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꿈꾼다. 일본을 롤모델로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통해서 다시 본토로 들어가 중공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겠다는 엄청난 꿈을 품고 경제 대국의 초석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국민당을 따라 중국에서 들어간 "외성인"과 타이완 섬에 살던 "본성인" 그리고 말레이계 원주민이 어울려 살게 된다. 외성인과 본성인들의 갈등도 발생하고(2.28 사건),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말레이계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사용해서 동서 관통 도로를 확장하는 등 정치적 불안함도 있었으나, 좌우 냉전 이념으로 인한 결속력과, 앞서 언급한 일본의 기술력, 원주민이라는 값싼 노동력, 남겨놓은 사회 인프라 시설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전자제품 강국 일본을 따라서, 대만은 전자 부품산업에 치중을 하게 된다. 일본이 완제품을 팔았다면,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대만이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데스크톱 컴퓨터를 쓴다면, 당신의 메인보드는 ASUS, MSI, Gigabyte라는 대만 회사에서 제작했을 확률이 95% 이상이다. 당신이 아이폰을 쓴다면, Foxconn이라는 회사의 부품이 100% 들어가 있고, HTC, acer 등 해외에 나가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그 브랜드들이 다 대만의 회사들이다. 뿐만 아니다. 세계적 그래픽 카드 제조사의 양대 NVIDIA의 젠슨 황 사장 AMD의 리사 수 사장은 모두 대만 출신이다.
우리가 조선업, 자동차 산업, 그리고 완제품 전자산업에 치중할 때 대만은 부품 전자산업에 집중을 했다.
우리는 부품산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큰 생산시설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대기업 위주의 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현대자동차, 기타 조선업종 (한진, 대우, 현대 중공업), 삼성, LG의 완제 전자제품이다.
그 대기업들은 분명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세계 시장을 점령해 나갔으며, 뉴욕 타임스퀘어서 혹은 공항 항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인들의 자랑이 되었다.
한국과 대만은 홍콩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이라는 별칭으로 경제적 가능성을 외쳤다. 물론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며 엄청나게 휘청거렸지만, 대만은 발 빠른 대응으로 별 탈 없이 경제 위기를 넘어섰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 보이듯 재계 서열 30위권 기업 중 절반 이상이 파산을 했다. 당시 우리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비난하며, 중소기업 위주의 대만의 경제를 부러워했다. 심지어 대만의 경제를 닮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떨까? 물론 대만에도 Foxconn과 같은 글로벌 기업도 있다. 하지만 완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acer의 경우를 보면 삼성 혹은 LG에 비하면 중소기업 수준의 매출 규모에 불가하다. 나머지 회사는 언급조차 무의미하다. 또한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인해서 성장이 어려워 중소기업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결코 반 대기업 정책 때문에 그 회사들이 대기업으로 갈 수 있는데 못 가는 것이 절대 아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소득 주도 정책에 대해서 비판이 많다. 또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대기업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국민정서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통해서 우리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대규모 자본을 집중시키는 국가 정책을 통해 조선업,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휴대폰 산업이 발전을 해왔다. 분명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고, 대기업에 수익이 뭉처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대학생들이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좋으나 싫으나 대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다만, 반도체라는 신사업으로 우리 경제가 2017년을 버텼고, 휴대폰으로 2018년을 버텼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신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 대기업 및 정부의 역할이다. 신사업, 새로운 시장의 발굴이 없기 때문에 현재 한국 경제가 얼어붙는 것이다. (대만은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하여, 십수 년째 경제 성장률이 제자리이고 그에 따라 임금인상이 사실상 동결되어 있다. 대만 여행을 해보면 생필품 값이 우리보다 싼 이유가 경제 성장이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
무조건적으로 대기업을 비난하며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보여주기 식 지원은 단기간에는 효과를 볼지 모르나 현재 경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현재 경제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체질 개선, 경제 구조의 진화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그 진화의 방향이 성장은 대기업 주도로, 분배는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낙수효과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란 민족과 그 구성원, 지정학적 위치, 정치적 상황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하나의 유기 생명체이다. 한 생명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 아무도 모르듯 경제도 어떠한 식으로 진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국가 경제모델도 동일한 모델은 있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이 서로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진화가 될 수 밖에 없다. 대만형, 북유럽형, 일본형 경제와 같은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우리의 강점을 반영하고 우리의 환경을 반영한 우리만의 독특한 경제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