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 통행이다.
얼마 전 대한 상공회의소에서 100대 기업의 인재상을 발표하였다. 2008년부터 5년 단위로 현재까지 조사한 100대 기업의 인재상 속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창의성이 가장 우선시되었으나, 2018년에는 창의성이 6순위로 떨어졌고 5위의 있던 “소통과 협력” 능력이 1순위로 올라왔다.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10년 전에는 “시키면 다 할 것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시키면 다 할 수 있다”는 구직자의 말을 면접에서 가장 신뢰하지 않는 면접관이 되었다.
어떠한 변화가 10년 이란 짧은 시간 동안 100대 기업의 인재상을 변화시켰는지 우선 기업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2018년 인재상을 보면 각 업종 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항목들이 바로 “소통과 협력” “전문성” “원칙 신뢰” “책임감” 이란 항목이다.
하지만 2008, 2013년에는 창의성, 도전정신이란 항목이 매우 상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필자가 이력서를 열심히 쓰던 시기에는 핵심 키워드인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어떻게 인사담당자에게 어필할지 고심을 하였다.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능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오지를 다니며 인디아나 존스에 나올 법 한 일들을 이력서에 적어야만 했다. 대표적인 예가 유명 제약업체가 주최한 국토대장정이었다. 삼천리 화려강산을 도보 순례하고, 제약회사가 제공하는 피로회복제를 마신 덕분인지 자소설(자기소개서 + 소설이 합성된 신조어)에서 회사 이름만 “바꿔 쓰”는 신공을 펼쳐야 했다. 그 소설에서 나는 쓰러저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인재였다. 하지만 현실은 지원한 회사에서 보낸 “아쉽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우수한 인재를 모시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다”는 문자 메시지에 좌절하지 않고, 죽지 못해 도전해야 하는 현실뿐이었다.
사실 기업에서 요구하는 “도전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으로 기업에서 정의한 “열정”이란 단어의 변형일 뿐이었다.
당시 기업들은 왜 도전과 열정과, 창의성을 가진 인재들을 원하였을까? 우선 “기업에서 정의한 열정”의 뜻을 해석해보자.
기업이 속한 산업군(혹은 시장)에 관심이 있으며, 임금(wage)의 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즐기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자세로 공자님 말씀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실례로, 밤을 새워서라도 제품 혹은 시장에 대해 탐구하고 도전하며 즐기는 자를 기업은 찾고 있었다. 즐기는 자는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착각 속에 뛰어난 생산성을 발휘하고, 그 생산성을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불만”이라는 큰 저항 없이 수익을 거두어 들일 수 있으니까.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 또한 필요로 했었다. 필자가 입사할 당시에는 기존의 면접관이 겪어 보지 못한 속도로 IT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었고, 사회 및 기업 분위기도 혁신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모 회장님의 말씀이 칭송받던 시절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소비자의 니즈 속에서 IT 문물을 접해본 신세대의 아이디어는 인사 담당자들에게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보였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 게임기를 다룰 줄 알아서 컴퓨터와 휴대폰에 친숙한 20대 청년,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원색처럼 화려한 사고방식은 옳은 듯했고, 또한 그들이 주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의 아이디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기업이 “창의적 인재”를 찾기 시작했다.
대학교육까지 16년을 틀에 박힌 공부만 해 놓고, 톡톡 튀는 창의적인 인재라고 본인을 포장하려니 구직자 입장에서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톡톡 튀는 창의성을 표현한다고 면접장에서 상상도 못 할 톡톡 튀는 돌발행동도 서슴지 않는 면접자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열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라 본인을 포장하려 몸이 마르고 닳도록 스펙을 쌓았는데, 이제는 또 “소통과 협력”을 중시한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과연 “소통과 협력”은 정말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인가? 이번에는 사회적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새로운 인재상을 원하는지 고찰해보자.
1. 열정의 정의(定義)가 정의(正義) 로워 졌다.
열정도 원칙에 맞게 정의(正義)롭게 하는 것이 열정이지 원칙도 없이 무조건 적으로 밀어붙이고, 참는 것이 열정이 아님을 우리 사회는 깨달았다.
2005년에 모 은행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XX은행 방식” 이란 책이 있었다. “악바리” 정신을 기르기 위해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보고 호통을 치고, 그 호통에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음을 기업 문화라고 자랑스럽게 서술하던 시기였다.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꺼내서 한국의 조선산업을 창조했다는 창세기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와, 평범한 직장인에서 국내 최고의 건설사 회장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 이룩한 저자가 “신화는 없다”라며 본인이 창출한 신화적 이야기를 책을 써서 사회에 알리던 시대였다. 열정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인한 체력과 한계를 만나면 매번 돌파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강인한 내구성을 가진 인재임을 보여주어야 했다. 압박면접이란 이름으로 처음 보는 면접관에게 구직자는 감정을 구석구석 살펴 보여 주었으며, 하대하는 말투와 부모님 학력까지 물어보는 등 면접관에게 발가벗은 개인 정보를 보이며, 수치심 따위는 포기해야 했다. 거기서 참지 못하면, 나는 내구성이 부족한 열등한 구직 자니까….
참다 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장에 스스로를 위로하던 청춘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고통은 없다며 저항하기 시작했고, 취업난을 이용해서 이력서 한 줄이라도 적으려는 취업준비생의 약점을 파고들어 최저임금 이하로 업무를 부려먹던 기업의 “열정 페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노동을 했으면, 합리적인 수준의 처우를 받아야 한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 창의적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앞서 언급했듯이 면접장에서 돌발행동을 했던 사람들은 “상식을 깨는 행동”이 창의성이라 착각하고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단어에 기업과 구직자가 생각하는 정의가 서로 다름은 물론, 사회적 합의도 없었던 시대다. 창의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배운 적도 없었고,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 정도를 창의성이라 생각했다. 설령 신입사원의 머리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특히 국내 100대 기업의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 위해, 신입사원의 아이디어에 귀 기울어줄 회사는 없었다. 결국 창의성이 무엇인지 서로가 모르는 상황,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힘든 보수적 기업문화, 대학교육에서 실무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품성이 결여된 혹은 시장 상황을 모르는 신입사원의 호기로운 아이디어는 내부적 갈등을 불러오기만 했다.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 “신입이 120% 하려는 만큼 팀을 위험하게 하는 것도 없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창의적 인재도 면접관이 찾던 최고의 구직자로서의 덕목은 아니었다.
3. 새롭게 등장한 “소통과 협력”이라는 가치
“소통과 협력”이란 가치는 앞서 언급한 열정, 창의, 도전정신이라는 가치와는 상당히 차별화된 이미지로 보인다. 과거에는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해서든 뚫고 나가는 저돌적인 이미지의 가치가 우세하였다면, 소통과 협력은 비교적 어감 자체가 둥글고 부드러운 이미지다. 과연 시장의 거친 풍파를 뚫고 나갈 저돌적인 인재가 불필요할 정도로 경쟁이 소프트해진 것일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와 미래는 융합의 시대라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하면서 성과를 내야 하므로 “소통과 협력”은 필수 덕목이라고… 맞는 이야기다. 단, 기업 문화가 정말 유연하여 누구나 의견을 제시하고, 성과에 따른 공정한 분배를 받는 그런 회사라면 “소통과 협력”을 표면 그대로 해석하여도 좋다. 하지만, 필자는 아래와 같이 해석을 해보았다. (본인의 조직이 혹은 우리 사회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소통과 협력”이란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상사의 강압적인 지시에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 주고, 두루뭉술한 업무지시를 찰떡같이 이해하는 소통형 인재, 신입사원이지만 사장의 입장에서 회사를 바라보며 시장의 니즈와 정확히 소통할 수 있는 인재, 어려운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동료들과 소통을 하며, 주위 동료들과 마찰 없이 일하며 뛰어난 퍼포먼스를 만들어 내는 인재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마디로 슈퍼맨을 찾고 있다.
왜 면접관들은 “소통과 협력”을 최고의 인재상이라 생각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면접관 조차도 우리 회사에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기업의 조직 구조와도 연관이 있다. 보통 100대 기업의 경우 실제로 신입사원의 채용과 실제 업무를 하는 부서가 따로 떨어져 있다.
인사과 혹은 더 구체화되고 세분화되었다면, 채용팀, 인재확보팀과 같은 곳에서 인재를 리쿠르팅을 통해 서류 심사를 거친다. 우리 회사의 인재상과 실제로 근무하는 팀의 인재상은 반드시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철학적인 인재상과 (뜬구름 잡는 인재상과) 실무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 100대 기업의 경우 그 차이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실무진 면접, 임원 면접을 거친다고 하지만, 실제로 활용할 부서에서 실무진이 구직자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잠시 동안의 실무진 면접이 전부다. (그나마 있으면 다행이다.)
또한 구직자들도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필자 역시 구직자였을 때 야구티켓을 쥐어줄 수 있는 대기업이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원했으며, 처음 입사 한 팀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업무와 큰 차이가 있었고, 4명의 입사자 중 1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필자를 제외한 3명이 퇴사하였다.
“협력과 소통”이란 단어에 우리가 흔히 쓰는 “적당히, 알아서, 말귀를 알아듣는”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을까? 정말 기업은 신입사원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될 정도로 수평적 조직이며, 그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줄 나이 많은 직원들이 많은 조직일까? 우리 사회가 협력과 소통이란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인지 의문이 드는 점이다.
면접을 보면서 압박 면접이란 명목으로 무례하게 압박을 하는 것은 아닌지, 정규직인지 계약직인지 애매한 조항을 넣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협력과 소통”을 이야기 하지만 일방적으로 갑질을 근로 조항들을 갖고 있지 않은지 잘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면접자가 면접관을 면접 본다”
“소통과 협력”이란 덕목을 탓하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과의 소통을 우선 해야 할 것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이며 경쟁자에 비해서 강점은 어떤 것인지 이 정도 실력에 연봉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본인을 본 후 면접관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반면 면접관은 우리 회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구직자의 역량이 어떤 것인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막연히 훌륭한 인재를 찾기보다는 적합한 인재를 찾아야 한다. 막연히 고 스펙의 인재보다는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는 영어회화 수준이라던지, 필요한 경험, 시장에 대한 이해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사전 지식 부분도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회사가 구인 시장에서 실력 있는 지원자가 오래 다닐 수 있을 정도에 매력적인 회사인지 복지, 연봉, 기업문화, 브랜드 가치, 안정성 등 여러 가지 무형적 가치를 가졌는지 또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구직자들도 휴대폰으로 면접 족보를 공유하며, 나아가 회사를 평가하는 사이트에 쉽게 접근하여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다. 면접자가 면접관을 면접 본다는 것을 직시하고, 기업 스스로가 매력적인 회사, 면접자가 찾는 그러한 회사인지를 회사 측에서 스스로 성찰해 본다면,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를 오랫동안 최고의 퍼포먼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면접장에서는 면접관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듯 하지만, 면접 장을 떠나는 순간 구직자는 면접관이 하늘과 같이 모시는 고객 혹은 인플루언서가 된다. 회사가 철저하게 직원을 이용하 듯, 회사가 찾는 우수한 인재는 회사를 영리하게 이용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인 손해와 희생을 감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사관리, 조직행동론, 노동법 여러 가지 인사(人事) 관련 학문을 경영학부에서는 가르친다. 그것들의 목적은 단 하나로 귀결된다. 얼마나 개인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려, 회사의 수익을 창출하게 만들고, 그 개인과 개인이 마찰을 만들지 않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갖고 오느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을 이용해 어떻게 많은 돈을 벌어오게 만드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답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다. 영리해진 구직자를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강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나도 인간이고 너도 인간인 만큼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도 존중하면 된다. 직원을 부려먹는다는 생각보다는, 성과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 조직문화가 잘 정리된 기업에서 개개인은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며, 즐기면서 일할 것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자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