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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Jul 27. 2019

도쿄에서 백수 데뷔


왜, 어떻게 일본에 취직했어?


 일본에서 사회인 생활을 시작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고등학생 때 싫은 과목도 배워야만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좋아하는 것만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외국어를 좋아했는데 영어는 뭔가 지겨웠다. 마침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우던 일본어가 재밌었고. 대학생 땐 이것만 공부해보자 싶었다.



 공부는 재밌었다. 유학도 즐거웠다. 문제는 취업이었다.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으로 4년이나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한 일본어를 어떻게든 써먹고 싶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안정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어를 쓰는 대기업은 굉장히 적었다. 일본 기업을 포함해 몇 군데 지원하고 나니 선택지가 없었다. 사실 교직이수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강사와 같은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언어 자체로 돈을 벌기보다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일본어를 업무에서 쓰는 회사원]이 그때 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반기 취활을 맛보고 하반기를 준비하다 우연히 일본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무릎을 탁 쳤다. 월드잡과 현지 기업의 취업 정보가 올라오는 곳을 찾아보고 하반기는 한국과 일본, 2 트랙으로 준비를 했다. 주변엔 나처럼 일본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조언을 구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혼자 구글과 네이버를 넘나드는 폭풍 검색과 원어민의 도움을 받아 지원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했다.



 설마 되겠어? 반신반의했던 일본기업에 최종합격을 했다. 다른 한국기업은 이제 막 서류가 통과한 시점이었다. 교환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더 일본에 가봐야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이루어질 기회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무슨 일 했는데?


 2013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7년 차 회사원이 되었고, 그 사이 1번의 이직이 있었다. 첫 회사는 IT(SI) 회사였다. 기존 고객에 도입한 서버와 네트워크 기기, 소프트 웨어의 계약 관리와 시스템 구축 안건이나 자사 서비스를 수주하고 도입하는 일을 맡았다.

  


 1년 차 때는 난생처음 겪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고등학생 때부터 쭉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내게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 쓰는 내 방이 생겼다. 매일 도쿄의 지옥철에 낑겨 괴로운 출퇴근을 했지만 내 월급으로 내 맘대로 먹고사는 것이 기쁘고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2년 차가 되니 슬슬 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처음의 긴장과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성취감이나 뿌듯함이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신규 개척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전시회 부스에서 홍보를 하고 처음으로 영업전화도 돌려보고 많은 회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2년 차의 노력은 고스란히 3년 차로 넘어왔다. 신규 개척에서 성과를 낸 덕분에 표창을 받고, 매니저와 함께 하던 기존 고객은 내가 메인이 되었으며, 혼자 담당하는 고객도 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결과를 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는 갖고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기획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내 일의 결과로 일어나는 변화가 내 눈에 보이는 확실한 피드백을 원했는데 이 일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감정과 의지를 잃고 무표정으로 기계처럼 일하는 내가 있었다. 잊고 있던 초심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퇴근 후 카페에서 공책을 펼쳐놓고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 내가 해 보고 싶은 일, 지금 일에서 개선하고 싶은 것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직을 결정했다.



 

 두 번째 회사는 광고 미디어 회사였다. 신축 아파트를 짓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제안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을 좋아했다. 첫 회사와 비교하면 재량권이나 제안의 폭이 넓어졌다. 타겟을 설정하여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면 타겟이 움직일까를 생각하고 광고를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 내가 만든 광고는 인터넷, 지하철역, 슈퍼, 편의점, 쇼핑몰 등 내 생활 동선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우리 회사의 잡지나 어플을 쓰는 사람을 보면 그게 그렇게 뿌듯했다. 사내 인간관계, 연봉, 네임밸류 등 이번 회사는 꽤 모든 게 완벽했다. 스스로도 영업으로서 성장했다는 걸 실감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상을 받았다.


 

 하지만 단단해지는 나의 커리어와는 반대로 내 삶은 점점 무너질 것 같았다. 회사에서의 노동은 곧 내 에너지의 output인데 쓰고 난 후에 제대로 input하지 못해 매일 나를 소진시키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그 무너짐은 본질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과 일.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지금 이 레이스에서 잠시 내려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더 시간이 끌면 회사가 주는 안정감과 돈에 밀려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해 버릴 것 같았다.



첫 번째 퇴사가 다음에 무슨 일하지?에 대한 결과였다면,

두 번째 퇴사는 [나는 누구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에 대한 결과였다.






This story

 공부한 걸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 갔다. 회사원이 되어 돈은 벌었지만 하루하루 내가 어딜 향해 달려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이 외쳤다. 서른 하나, 그제야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자발적 방황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잘 쉬고 잘 자라기라는 나만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현재진행형 일본 백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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