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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Aug 24. 2020

퇴사 후 6개월동안 뭘 배웠나

삶을 생기있게 하는 건 '돈'보다 나만의 '작은 성취'였다

이전 이야기 ; 회사 밖에서 돈을 벌고 싶어서 도전했던 두 개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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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업 상담서비스와 블로그로 돈을 버는 일은 이렇게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퇴사 전에 가장 많이 생각한 일들이었는데 이렇게 금방 놓을 수 있었던 건 잠시나마 내 머리를 스친  ‘이러려고 퇴사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청 즐기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고생스러워도 꼭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다닐 때랑 뭐가 다르지? 이런 마음이라면 회사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한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퇴사 후 여행 같은 달콤한 것들을 다 제쳐두고 상담서비스와 블로그 운영을 우선한 이유는 잘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퇴사 이유 중 하나였던 ‘회사 밖에서 단돈 100원이라도 벌어보기’ 때문에 돈이 들어올 것 같은 일에 집중했고, 회사 일을 할 때와 별다르지 않은 씁쓸한 기분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돈도 안 되는 일을 뭐하러 하냐.’

‘직업으로 할 것도 아닌데 이쯤 해둬.’

‘생산적이지 못한 건 그만둬,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런 생각들이 순수한 나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사실 나도 브런치의 누군가처럼 세계여행이 가고 싶었고, 그냥 정말 백수처럼 빈둥거리고도 싶었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웹디자인이나 가구제작 같은 걸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은 필터에 걸러지듯 저 말들에 걸러져서 흘러가버렸다. 이 나쁜 버릇을 버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씁쓸한 기분을 맛볼 것 같았다. 


나는 퇴사 이유에서 ‘내 힘으로 돈 벌기’를 잠시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시시하고 작은 거라도 내 것을 만들어보는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 번째 도전은 글쓰기였다. 

대학생 때부터 띄엄띄엄 올리는 일기 같은 글에 가끔 공감이나 댓글을 받으면 입꼬리가 조금씩 서서히 올라가는 미소를 지었다. 첫 책을 출판할 때 받았던 '책을 기다리고 있다'는 댓글의 설렘도 기억하고 있었다. 힘들 때면 늘 일기를 썼고,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글로 끄적이며 정리해나가던 습관이 있었다.  


블로그 글쓰기를 한 후에 내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브런치에 도전했다. 퇴사 후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고, 책에서 다 풀지 못한 일본 생활에 대해서도 남기고 싶어서 어렵지 않게 작가 신청을 쓸 수 있었다.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는 후기글을 보며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렸는데 이런, 한 번에 통과해버렸다. ‘좋네요. 앞으로 열심히 써봐요.’ 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30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1막, 2막, 3막을 가진 나름의 구성을 짰다. 당시에는 좋은퇴사의예. txt처럼 금방 대단한 결과가 나올 줄 알고 3막은 그 결과를 적으려고 했다가 아직도 매거진을 마무리 못하고 있는 건 안 비밀이다. 어쨌든 2막의 주 내용은 퇴사 후에 깨달은 것들이었는데 무려 두 개의 글이 조회수 5000을 넘어 내 글 랭킹의 1,2위를 차지했다. 조회수 1000 단위로 울리던 그 알람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5000이 넘는 분이 읽으셔도 댓글은 10개가 채 안 되는구나. 좀 더 공감 가는 글,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글을 써야겠다’하고 생각했다.

  

휴식기 후반에는 재취업 준비를 하며 글을 쓰지 않았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탓에 써둔 글을 묵히거나 마무리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하지만 한 번도 글쓰기를 아예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쓰지 않는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박준 작가의 책 구절처럼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갖고 있었다. 그 글들에서는 지난날의 내가 보였고 그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보였다.  



네 번째 도전은 우쿨렐레였다.

어릴 때 피아노를 쳐서인지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건 나의 일상적 욕구였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의 옷들을 바꾸어 걸듯 플레이리스트를 정기적으로 갈아엎곤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일정만큼이나 특정 장소에서 들을 노래를 선정했다. 20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일본 집들은 너무  좁아서 피아노를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시엔 오사카에 살고 있어 피아노를 두기에 충분했지만 다시 도쿄에 가면 좁은 집에 살게 될 확률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디지털 피아노를 사면 될 것을 무슨 고집인지 진짜 피아노를 사고 싶었다. 결국 작은 악기를 찾다가 우쿨렐레를 집어 들었다.

 

처음엔 학원을 알아봤는데 역시나 일본. 수강료가 너무 비싸서 독학을 결심했다. 일주일에 1곡씩 연습해서 유튜브에 올려보기로 했다. 기타를 배웠을 땐 다음 날 손가락이 아리는 아픔을 겪었는데 우쿨렐레의 현은 훨씬 부드러워서 하루에 몇 시간이고 칠 수 있었다. 층간소음이 걱정돼서 매일 강가에 나가 우쿨렐레를 붙잡고 놀았는데 코드가 단순한 곡은 1시간만 연습해도 금방 연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쿨렐레는 제주도 푸른 밤으로 시작되어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라라 랜드, 가을밤, 장범준의 노래방에서 끝이 났다. 왜 때문인지 성대에 폴립(작은 혹)이 생겨 제거 수술을 했고 수술 전후로는 노래를 하지 못했다. 우쿨렐레 단독 연주보다 노래를 부르며 치는 걸 좋아하던 나는 노래를 할 수 없게 됨과 동시에 우쿨렐레도 손에서 멀어졌다. 그 후 새로 이사한 집이 악기 연주 금지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땅을 쳤지만 몇 개의 우쿨렐레 영상을 올린 뻔뻔함으로 브이로그를 시작했고 이참에 그냥 디지털피아노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당당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다시 우쿨렐레를 안아줄 생각이다. 

 




글쓰기와 우쿨렐레 이외에도 라이트룸을 공부하며 사진 보정을 하고 놀거나 수영교실에서 어푸어푸를 연발하며 시간을 보냈다. 모자란 요리 솜씨를 조금씩 늘려가며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있던 밤, ‘아, 지금 딱 행복하다’ 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나의 '색'과 '향'들이 무의식의 필터에 걸러져 무색무취로 변해가는 동안 나는 힘들었고 인생이 막막했다. 회사로부터의 자유, 부수입의 창출같은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퇴사 직후의 내게 필요했던 것은 딱 이 정도의 행복과 여유였다. 처음 받아본 헬스PT, 수영교실, 걷거나 자전거 타기, 강가에서 우쿨렐레 연주하기, 글쓰기, 책 읽기, 사진을 찍고 라이트룸으로 보정해보기, 요리하기. 

2019년의 여름, 정말 오랜만에 내 삶에 생기가 넘쳤다.


퇴사 후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애썼던 마음은 나를 씁쓸하게 했고 불안하게 했다. 오히려 그 마음을 내려놓고 여정을 길게 보고 작은 성취부터 찾자는 마음은 내게 행복이라는 말을 내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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