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6. 퇴사 컨설팅에선 뭘 할까? (上)
나 이해하기 = 나 관찰하기
2 나답게 살기에도 순서라는 게 있어!
퇴사 컨설팅의 첫 만남에서 내가 들은 첫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쉬세요」 였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껏 뭔가 해보겠다고 돈 들여 컨설팅까지 신청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그로부터 2주일 후 나는 무릎 수술을 했고 정말로 쉬어야만 했다.
다리 덕분에 휴식을 가진 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마음속 어딘가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직은 아니야. 라고 외치는 꼬마 아이가 있는 것 같았다. 즉,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이 마음은 뭘까?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려고 퇴사까지 한 마당에 이제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거야? 왜? 나는 난처해졌다.
그리고 퇴사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그 마음의 이유를 깨달았다. 조언자가 쉬라고 말했던 이유도.
나는 가장 중요한 기본을 간과하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한 2달을 경험했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에는 번아웃 증세도 있었다. 그런 시간을 겪고도 앞으로 어떻게 스스로를 돌볼 지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서 어떻게 돈을 벌까가 우선이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외치던 꼬마 아이는 어떻게 나를 충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또 에너지를 쓰는 일에 미친 듯이 달려가려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자 저항이었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거야.
그동안 정리했던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것들은 서로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순서와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하나의 큰 방향이 보였다. 이들의 균형이 무너져서 내가 무너진 거구나. 혹은 불안을 느끼는 거구나 하고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 그림을 바라보며 당장의 새로운 능력개발을 서두르기보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기초를 잘 다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걸릴 지라도 이들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하나씩 원하는 걸 이루어나갈 때 장기적으로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각각의 단계에서 원하는 걸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 습관화할 것들을 정했다.
정말 단순한 것들이지만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했고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들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
1. 일주일에 3회 이상 근력운동, 1회 수영을 한다.
2. 20시 전에 저녁식사를 마친다. 매일 먹은 것을 기록하고 의식해서 맛있고 영양 잡힌 식사를 한다.
3. 한 달에 1번은 푸르른 대자연을 보고 온다. (산책 / 등산 등)
4.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격려한다.
<자유시간의 확보>
1. 아침 6시 기상 훈련하기 (이건 사실 지금도 어렵다..)
2. 시간 트랙킹하기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내가 원하는 것에 계획적으로 시간 쓰기)
눈 뜨면 갈 곳도 꼭 해야 할 일도 없는 백수였지만 내가 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루 계획표를 짰다. 그리고 바인더에 실제로 어떻게 시간을 썼는지 기록하고 일주일에 1번 그 주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하지 않으니 늦잠 자고 두 끼 밥을 지어먹고 집안일하고 운동하고 예능 몇 편 보고 하루가 끝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간절했던 내 시간이기에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시간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3. 강한 생산성 의식 (시간제한 / 하지 않아도 되는 일 / 남에게 부탁할 일을 생각하기)
요즘의 나는 이렇게 차근차근 작은 행동부터 바꾸고 돌아보고 나답게 살기의 레벨을 높여나가는 중이다. 나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글을 쓰거나 악기를 독학하는 등 관심사들을 하나 둘 발견하고 발전시키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이 워밍업으로 힘을 더 길러서 목표로 했던 나의 서비스 만들기도 차근차근 실행하려고 한다.
퇴사 직후 내가 생각했던 나답게 살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업을 만드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를 더 몰아세우고 초조해질 뿐이었다. 여러 고민 속에 지금 이야기했던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면서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도 바뀐 듯하다. 지금 생각하는 나답게 살기란 나를 잘 돌보면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최대한 응원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3 좋아하는 것은 찾아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퇴사 컨설팅의 2번째 만남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하고 싶어서 했던 일 중에 한 달 이상 지속한 것과 한 달 이하로 지속했던 것,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써 놓고 보니 한 달 이상의 것들도 한 달 이하의 것들도 대부분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30개 정도 리스트업하고도 그중 업으로 삼을 만큼 확신이 드는 것은 없었다. 왜일까? 좋아하는 걸 일로 삼기만 하면 고민 해결 끝! 일 텐데.
나는 그것들을 좋아한 것은 맞지만 생각보다 거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냥 여건이 될 때, 마음이 내킬 때 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진짜 좋아했다 확신할 수 있고 직업으로까지 생각했었던 건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공부와 회사 일 이외에 내 인생에서 가장 꾸준하게 긴 시간을 들였던 배움이었다. 6년 동안 여러 곡을 연주하고 발표회와 콩쿠르도 나가며 이런저런 경험을 쌓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피아노가 좋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눈앞에 앉아있는 조언자는 지금 하고 있는 퇴사 컨설팅 일이 정말 좋고 즐겁다고 말했다. 그녀는 7년 전부터 3000명이 넘는 직장인들의 퇴사 고민을 들어온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15개의 다른 직업을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며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경험의 양의 차이라는 걸 확실히 이해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은 내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30개가 넘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를 골라 경험의 양을 늘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