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한 나의 '흥미'에 애정을 쏟자
요즘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 저자는 뭔가를 설명할 때 꼭 그 단어의 어원이나 한자의 뜻을 풀이하면서 글을 시작하더라. 가령, 이런 식으로 말이야.
말로 하는 언어, 말이 아닌 암호, 표정, 제스처, 음악, 회화, 건축 모두가 의미를 실어 나르는 기호가 된다. 이 기호sign들을 이해하고 의미를 공부하고 그 의미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때는 과감히 해체de하여 재구축하는 과정을 기획이라 부른다. 그래서, 기획은 곧 디자인design이다.
너무 광범위해서 늘 물음표였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에 이만큼 알기 쉬운 설명이 없었어.
생각해보면 나도 그러곤 했지.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노오력하다보니 너무 생각이 많아져서 애초에 그 질문의 의미는 뭐지? 혼란스러울 때. 국어사전을 뒤적거리곤 했잖아.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이 질문이 그랬어.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나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책을 읽는 북튜버를 보면 나의 좋아함은 좋아함이 아닌 것 같았지.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1년 365일 휴일만 되면 여행을 다니는 블로거들을 보면 나의 좋아함은 이내 작은 점이 되고 말았어. 그렇게 하나하나 점이 되어 사라지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점점 자취를 감췄어.
대체 좋아한다는 건 뭐지? 생각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좋아한다를 쉬운 말로 풀어보고 싶었어.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고 유튜브를 봤지. 내가 할 수 있는 단기간이자 가성비가 높은 노력들이야. 그리고 금방 [좋아한다]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1. 상대방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추천하고 있다면 좋아하는 거
2.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늘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
3.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
4. 몇 시간이고 앉아서 주야장천 질리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
5. 지금은 못하는데 잘하고 싶은 거. 그래서 자꾸 잘하는 사람의 SNS를 팔로우하고 따라 하고 있는 거.
이렇게 풀어놓으니까 별 거 아닌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떠올랐어. 인생이란 타이틀을 붙일 드라마나 영화, 유튜버, 노래를 발견하면 주변인들에게 TMI를 남발하는 모습.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진지충처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 대로 살고 싶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계획하고 배우고 포기하고 실패하는 모습. 안 된다고 거절당해도 이유를 묻고 또 제안하는 모습. 주어진 건 꼭 해내고 싶어서 무리하게 노력하는 모습. 기억하고 싶은 것, 깨달은 것, 나의 생각들을 글로 옮겨 쓰는 모습.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모습. 같은 드라마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ost를 들으며 감동하고 장면을 떠올리고 또 감동하고 대사를 받아 적는 모습. 우쿨렐레를 치는 모습. 방이 예쁜 사람, 옷 잘 입는 사람, 사진 잘 찍는 사람의 SNS를 팔로우한 모습.
아, 자잘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의 흥미 범위구나 했어.
북튜버와 여행 블로거와 나를 비교하며 작은 점이 되었던 나는 좋아함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그저 나의 24시간에서 그것들이 얼마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느냐,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정도를 늘리는 것, 시간의 투자는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걸 더 발전시켜봐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계획적으로도 늘릴 수도 있는 거잖아.
생각해보면 퇴사 후 초기에 나는 그럴듯한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 꽤 매달렸어.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업으로 연결될 만한 좋아하는 것을 말이지. 하지만 그런 완벽한 좋아하는 것 따위 평일엔 집-회사를 반복하고 주말엔 집-슈퍼를 반복하던 평범한 사람에게 있을 리가 있겠어. 찾으려고 할수록 스트레스였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시시해 보여도 흥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 좀 더 애정을 쏟고 키워나가는 거구나. 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생각했지.
어쨌든 그 모든 고민의 이유는 내 삶이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이잖아. 꼭 업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걸 키워서 그게 일상의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부는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 잘 키운 점이 어느 날 눈덩이처럼 산만해져서 업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좋아하는 걸 대하는 마음이 좀 더 가벼워졌고 즐기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