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70년대에 학교를 다니던 때는 다들 가난한 때였다. 책가방이 없어 천에 책을 넣고 둘둘 말아서 어깨에 메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
국민학교 입학식에는 꼭 명찰과 함께 손수건을 달고 다녔다. 하도 콧물을 많이 흘리고 다녀서 학교 방침이었다. 학교에서 옥수수빵도 나눠 주던 시절이라 밥을 굶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집에 어떤 가전제품이 있는지도 조사했고 기생충이 많아서 변을 채취해서 학교에 내면 기생충 약도 주는 시절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기생충 약을 먹고 기생충 나온 것을 세어오라 해서 개수까지 적어냈다. 살아서 움직이는 기생충이 변을 통해 나오면 엄청 길고 징그러웠다. 여러 번 걸린 친구들은 친구의 변을 덜어서 내기도 했다. 모르고 안 가져온 친구는 여러 명의 것을 모아서 내기도 했다. 더러워도 혼나기 싫고 청소하기 싫어였다.
가정방문도 직접 담임 선생님이 다니셨다. 하교 시간에 함께 집으로 모시고 오면 부모님과 상담을 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하셨다.
매주 월요일에는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머리 검사를 했다. 머릿니와 서캐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친구랑 월요일 아침이면 서로 이를 잡아주고 검사하는 쪽 머리 반쪽만 서캐를 잡아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떤 친구는 수업하다 머릿니가 얼굴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옷에서도 이가 참 많았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릿니가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선생님이 어떤 때는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 머릿니 검사도 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서케와 머릿니가 많아 손으로 머리를 끍으면 손톱에 피가 묻어났는데 이가 죽으면서 남긴 흔적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이 그 당시는 당연하다고 여겨 창피함도 모르던 때였다.
때검사도 하고 위생이 좋지 않았던 당시라 손톱검사 발톱검사까지 했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장난쳐서 걸려도 받아쓰기 50점 아래는 청소를 해야만 했다. 교실 바닥이 마루라서 초를 먼저 칠하고 걸레로 닦는데 줄을 맞춰서 하면 장난치는 아이들은 툭툭 치며 닦다가 넘어지고 초를 너무 많이 칠해서 넘어지게 하기도 했다. 잘 닦아진 바닥에서 썰매를 타고 놀다 넘어져 다투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 들어서면 태극기를 보고 경례를 해야 했고 애국가가 울리면 따라 부르고 태극기를 내리는 당번도 있었다.
주번이 등교시간이면 학교문 앞에서 가방 검사도 하고 복장검사도 했다. 주번완장을 차고 어깨에 힘을 주고 말이다.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도 있어 수업하던 중에 사이렌이 울리면 전교생이 운동장 나무아래 모두 모여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공훈련이었다.
삐라를 주워오면 공책을 주는 때에서 삐라을 일부로 주우러 다녔다.
반공훈련을 철저히 실시하던 시기라 모의훈련도 했다.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다녔는데 그 속에 수상한 군인을 신고하면 상도 주고 공책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70년대는 반공정신을 강조하는 때였다. 간첩을 신고하면 포상금이 커서 밤늦게 다니는 사람이나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수상하다 여겨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사랑이 컸고 충성심이 강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가난했지만 친구들과 싸우면서 함께 놀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