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스쿨버스
"엄마, 스쿨버스 타고 가는 길이 넘 멀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버스에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너무 빨리 학교에 도착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대부분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한다. 같은 학교 아이 엄마들끼리도 스쿨버스 등하굣길에서 친해지게 된다. 초~중등 과정까지 있는 아이 학교는 스쿨버스에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이와 같은 학년인 여자아이들이 2명(OO, ☆☆)이나 있었다.
초반에 쭈뼛하게 혼자 스쿨버스를 타던 아이는 곧 같은 학년 여자 친구들과 친해져서 환한 얼굴로 하교 버스에서 내리곤 했었다.
그렇게 며칠을 즐겁게 다니더니 하루는 잔뜩 울상인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엄마, 나 OO이가 앞으로 나랑은 버스에서 같이 안 앉겠대. OO이 엄마가 원래 같이 앉던 친구랑만 앉으라고 했대."
".... 설마~ 3명이니까 번갈아 앉으라고 한 거겠지. 너랑은 같이 앉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을라구."
"아냐, OO이가 그랬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스티커랑 편지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던 사이였는데. 이상하다 싶어 OO이네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혹시 아이들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 뒤에야 답이 왔다.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예전에 같이 버스 타고 앉아 가던 둘이 조금 아쉬워하길래 그럼 먼저 가서 ☆☆이 자리 잡고 같이 앉아 가라 했는데 말이 와전된 것 같다고. 아이가 많이 서운했겠다며 오해라고 잘 설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에게 "아니래, 원래 둘이 같이 앉다가 전보다 못 앉는 일이 많아지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었나 봐. 너랑은 절대 안 앉겠다고 한 건 아니래"라고 말해주니 얼굴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다음 날엔 ☆☆이(또 다른 스쿨버스 친구)가 아이에게 와서 "나 이제 원래 같이 앉던 OO이랑만 앉아야 돼."라고 말했다 한다. 그게 뭐라고.. 그냥 뒷자리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가면 안 되나 싶었지만 아이들(혹은 아이들의 엄마들)은 그게 큰 무언가였나 보다.
그 이후로 아이는 그 친구들과 같이 버스에 앉아 가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나 등하교 길에 만나도 서로 인사도 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결정에 아이 엄마들이 관여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이 한 말에서 그저 아이들끼리 결정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뿐.
환영식 치고는 꽤나 매운맛이다.
새로 왔냐며 몇 차례 티타임을 가질 때도 서로 언니 동생 이름을 부르며 있다가 나에겐 극존칭을 쓰며 대화할 때 느껴진 거리감이 어색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알고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우리 아이 학교는 엄마들 간에 사이가 끈끈하기로 유명하단다.
그게 나와 아이에겐 단점이 되었다. 나야 같이 생활하는 게 아니니 거리 두며 지내도 괜찮지만 아이는 매일 스쿨버스를 타며 불편한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학교 어땠는지 물어보면 괜찮았다 하지만, 스쿨버스를 타고 내릴 때 아이 모습은 조금 시무룩하다.
이번 학기에 우리 집 말고도 두 집이 새로 왔다. 우리 아이보다 윗학년인 남자아이와 우리 아이와 같은 학년의 여자 아이.
여자 아이 엄마와 아이 학교 행사에 같이 가다가 아이들 학교 생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친구 사귀는 법이 조금 서툰 그 친구는 알고 보니 반에서도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같은 한국 여자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가 "따라다니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아이고. 이 친구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군요. 우리는 베트남 생활 적응이 쉽지 않다고 쓴웃음 지으며 서로 위로했다.
남편은 결국 아이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하면서도 "엄마들 차 마시는데 같이 안 가? 그래도 커뮤니티에 들어가긴 해야 하지 않아?"라며 외따로 떨어질까 조금 걱정하는 듯하다.
동그랗게 모여 하하 호호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견고한 성벽처럼 느껴지는데, 아이 때문에 그래도 넉살 좋은 척 다가가야 하는 걸까.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영상을 보며 살포시 마음을 접는다. (마음먹는다고 살랑거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지만)
하루는 혼자 버스 탈 생각에 굳어 있는 얼굴로 나서는 아이에게 "창 밖으로 바깥 구경하면서 가다 보면 금방 학교 도착할 거야."라며 토닥여 주었다.
다음 날은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친구들의 모습에 서운해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이유도 안 알려주고 갑자기 안노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야. 그 친구들과 멀어진 거 아쉬워하지 말고 반에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랑 오늘 뭐 하고 놀까 생각하면서 가다 보면 금방 학교 도착할 거야."라고 힘주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그 친구들 미워하지 말고 먼저 인사도 해보고 선물도 주면서 마음 돌리기를 기다려 보자고 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이었다면 그렇게 조언해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한참 미성숙해서인지 그 친구들과 전처럼 친해지도록 노력해 보자고 하지 않았다. 이미 영문을 모른 채 속상한 아이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무리 짓기가 여자 아이들이 크면서 한 두 번씩 겪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그런 일을 겪으니 머리가 아닌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나와 남편의 결정으로 온 오게 된 타지.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서 조금 빨리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아이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현명한 엄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걸까?
답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아이를 꼬옥 안아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