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성장하려면, 실패해 봐야. 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3-1 나쁜교육 - 유약함의 비진실

by 투덜쌤
XL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아직까지도 읽고 있다.

이 브런치 어딘가에 이 책을 읽고 쓴 글도 있다.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빨리 읽기 아깝다. 그래서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다.


최근에 가졌던 고민들... 왜 사람들은 서로를 비난하려 애쓰는가? 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되는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알겠고 방법도 대충 알겠는데, 다른 사람이 인정할 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들긴 하다.

광기에 휩쓸린 그 사회 속에서는 모두가 침묵하지 않는가? 내가 무슨 투사도 아니고.


아무튼, 진실이 아니라고 한 세 가지 명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 한다.


유약함의 비진실 :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쇠는 달굴수록 더 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대장장이는 그렇게 쇠를 두드리고 다시 열을 가했다가 또 두드리길 반복한다.

그러니까 인간도 한계에 갈 때까지 몰아치고, 그런 시련을 이겨내야 인간이 된다.

고, 예전에 많이들 생각했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나오고, 지금은 괜찮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있을 후유증을 걱정하고,

증후군, 포비아 뭐 이런 것들이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시 되면서 흐름이 바뀌는 듯 하다.

솔직히 나의 정신건강은 나 아니면 누구도 모르지 않는가?

내가 아프다는데 넌 안아픈거야 라고 이야기 해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래서 나를 위로하고, 내가 중요하고

그래서 내 감정에 더 이상 방해받는 어떤 것들을 무시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미리 이야기하건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평온만 추구한다. 평화만을 바란다.

나에게 해 주는 모든 조언들이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한 발 떨어져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게 필요한가?


'나'만을 생각하며 '내 감정'만을 중요시 하게 여긴다면 그건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적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는 필요하다. (소시오패스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런데 나를 괴롭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과연 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극단적으로 안전한 공간에 나 혼자 사는 것이 행복일까?


아직도 나는 쇠는 달굴수록 강해진다고 믿는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걸 배우고 그 지식을 전수하고 (비록 꼰대라고 불릴지라도)

지금의 현실에서 실행하면서 새로운 지식이 생성되고 발전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시행착오는 분명 필요하고, '당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은 이겨내야 하는 목표가 되는 거라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늘상 일어난다.

일부 학부모의 과보호, 교사의 과잉친절, 학생들의 낮은 도전정신 그리고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는 안일함.


급식시간에 다양한 음식을 맛봐야 새로운 음식을 만날텐데, 우리 애는 야채를 못 먹는다고 먹지 말게 하란다.

그리고 아이는 한 개 먹을때마다 계속 구역질을 한다. 이게 심리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의학적인 이유일지 교사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알러지가 생긴게 아니라면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할 뿐이지.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고 여러 방법으로 타이른다. 아마도 예전에는 약간의 강압적인 분위기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랬을 때의 학부모 반응으로 인해 교사들도 시행착오를 거친거지. 굳이 부모가 싫어하는데 내가 왜. 하지만 아이들이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건 아이의 성장발달에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이러한 교사들의 입장을 지지한다. 물론 일부 학부모들은 거부하기도 하고, 막무가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랴.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연약한 존재인걸. 그리고 극단적으로 이야기가 나돈다. "애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이다가 학부모가 학교에 교육청에 청와대 신문고에 항의했대" 어디까지가 진실,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르는 이 소문들에 참 쉽게 마음이 꺾인다.


어쩌면 나도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에 내가 더 "약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급식지도를 하지 않는다면 분명 약해진 것이겠지. 하지만 가정통신문, 알림장, 학교통신을 통해 급식 이야기를 전달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을 한다면 나는 약해진 것은 아닐터. 나는 다른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일터. 그래서 나는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라는 어른과 학부모라는 어른들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들을 품어줘야 한다. 학교폭력도 결국 이 안에서 해결되어야 좀 더 자라서 학교가 아닌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된다. 아니 훌륭한 인간이 된다.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인간 본연의 감정일거다. 그리고 내가 약할거라고 믿는 공포감이야 말로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가장 큰 적이 될 것이다. 약해지지 않으려면 단련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오르거나, 운동해서 근육을 얻는 것들 모두 단련해서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아닐지.


약하다고 생각하면 좀 더 강해지도록 단련하는 것이 필요한 거다. (한발작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

나를 안전한 공간 속에 계속 가두지 말자.

감정도 성적도 근육도 그리고 돈도 (음 재테크에는 소질이 없던데. ㅠㅠ) 단련해야 커진다.


그거슨 진리!

모처럼 진지한 글을 썼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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