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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Jan 17. 2024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알아야 한다

2000년생이 온다 (임홍택, 십일프로, 2023)

새해 처음으로 읽기를 끝낸 책이다. 귀로 들은 책도 있으나 종이책이 주는 매력과는 사못 달라서 어느 게 더 좋다고는 이야기 못하겠다. 다만 이 책은 작년에 나오자마자 산거라 종이책으로 읽었다. 인상 깊은 구절을 읽고 또 읽는 재미는 있지만 요즘 ebook의 편리성을 체험한 지라 슬슬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런데 여럿이 돌려 읽기에는 또 종이책만한 것도 없지. 


2000년생에 대한 논쟁은 꽤나 많았던 것 같다. MZ다 뭐다 말들은 많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함이 많았다. 충격으로 따지자면 90년생보다는 더 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이 든 나의 입장일 뿐, 수치상으로 어디가 더 충격적인지는 모르겠다. 예전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라.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Main/article/all/20190304/94371930/1


하나하나 따지면 5번 빼고는 합리적이다. 5번도 나쁘다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 2000년생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이니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 중에서도 폰연일체가 있다. 아마 그들이 2000년대에 태어났다면 다들 폰과 빠져 살거니까 그냥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하련다.


처음에 이 책을 들었을 때에는 "도대체 요즘 것들은 뭐냔 말인가"라는 약간의 꼰대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주변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에 대해 설명이 필요했기도 하고.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건 "내가 젊었다면 나도 이들처럼 살았을 거 같다"는 거다. 기존의 조직을 욕하면서도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나와는 달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세상을 만들고 접하는 그들은 굳이 기존 조직에 적응할 필요가 덜했을 듯. 나 때도 젊은이들은 싸가지 없었고, 지금도 젊은이들은 싸가지 없었다. 나때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벽에 좌절하고 욕을 했다면, 지금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움을 한탄할 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적응하는 게 두려운 건 사람들의 심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대가 만들어 지는 듯 하고. 어느 세대나 꼰대는 있고, 싸가지 없는 이들도 있는 법.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문제인거지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그들의 문제는 아닐터. 이렇게 생각해야 자꾸 내 안에서 그들을 받아들일 듯 하다. 그래야 조직이나 사회가 유지될 것도 같고. 뭐 관리자만 아니라면 굳이 부딪치겠냐만.


2000년대의 세대적 특징 3가지라고 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지점도 있어서 이런 저런 정리를 해 보려 한다.


1. 초합리 : 합리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주관적인 합리성일 뿐이다만 이것도 기성세대의 지적질이라면 할 말은 없다. 결국 합리성을 다수결로 다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뭐든지 여론조사해야 하나?

2. 초개인 : 개인주의의 반대는 집단주의일텐데 집단이 우선, 개인이 우선 뭐 이렇게 따지는 건 아니다 싶고. 개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닌가? 내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고 싶더라도 결국 틀 안에서. 공동체의 삶을 무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알았으면. 

3. 초자율 : 스스로 잘 한다는 거겠지? 내 마음대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그런 사회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돈은 누가 줄까를 굳이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유튜브나 긱서비스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해서 생긴 사회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좀 더 자율적인 것 같기는 하다. 잘하는 쪽으로도 못하는 쪽으로도.


정리하고 보니 여전히 나는 그들을 못 받아들이나 보다. 이런 꼰대스러움이 있나.

이러한 세대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지가 참 궁금했는데,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하려고 이 책을 샀건만 이해하지 말라고? 깜짝 놀랄 말이지만, 그 뒤를 보면 납득이 간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알기만 하라고. 실은 많이 알면 알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지니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이해를 꼭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왠지 내 맘을 편하게 만든다.


그냥 그들을 알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려주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분배하고 협업하면 되는거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여 개인적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면 되는 거다. 말로는 얼마나 쉬운지. 하나하나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학급경영도 학년경영도 학교경영도 결국 사람들이 달라졌으니 스타일도 달라져야 하는 당연한 것. 무엇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방안일지.. 그건 내가 찾아야 할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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