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생이 온다 (임홍택, 십일프로, 2023)
새해 처음으로 읽기를 끝낸 책이다. 귀로 들은 책도 있으나 종이책이 주는 매력과는 사못 달라서 어느 게 더 좋다고는 이야기 못하겠다. 다만 이 책은 작년에 나오자마자 산거라 종이책으로 읽었다. 인상 깊은 구절을 읽고 또 읽는 재미는 있지만 요즘 ebook의 편리성을 체험한 지라 슬슬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런데 여럿이 돌려 읽기에는 또 종이책만한 것도 없지.
2000년생에 대한 논쟁은 꽤나 많았던 것 같다. MZ다 뭐다 말들은 많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함이 많았다. 충격으로 따지자면 90년생보다는 더 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이 든 나의 입장일 뿐, 수치상으로 어디가 더 충격적인지는 모르겠다. 예전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라.
하나하나 따지면 5번 빼고는 합리적이다. 5번도 나쁘다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 2000년생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이니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 중에서도 폰연일체가 있다. 아마 그들이 2000년대에 태어났다면 다들 폰과 빠져 살거니까 그냥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하련다.
처음에 이 책을 들었을 때에는 "도대체 요즘 것들은 뭐냔 말인가"라는 약간의 꼰대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주변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에 대해 설명이 필요했기도 하고.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건 "내가 젊었다면 나도 이들처럼 살았을 거 같다"는 거다. 기존의 조직을 욕하면서도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나와는 달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세상을 만들고 접하는 그들은 굳이 기존 조직에 적응할 필요가 덜했을 듯. 나 때도 젊은이들은 싸가지 없었고, 지금도 젊은이들은 싸가지 없었다. 나때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벽에 좌절하고 욕을 했다면, 지금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움을 한탄할 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적응하는 게 두려운 건 사람들의 심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대가 만들어 지는 듯 하고. 어느 세대나 꼰대는 있고, 싸가지 없는 이들도 있는 법.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문제인거지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그들의 문제는 아닐터. 이렇게 생각해야 자꾸 내 안에서 그들을 받아들일 듯 하다. 그래야 조직이나 사회가 유지될 것도 같고. 뭐 관리자만 아니라면 굳이 부딪치겠냐만.
2000년대의 세대적 특징 3가지라고 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지점도 있어서 이런 저런 정리를 해 보려 한다.
1. 초합리 : 합리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주관적인 합리성일 뿐이다만 이것도 기성세대의 지적질이라면 할 말은 없다. 결국 합리성을 다수결로 다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뭐든지 여론조사해야 하나?
2. 초개인 : 개인주의의 반대는 집단주의일텐데 집단이 우선, 개인이 우선 뭐 이렇게 따지는 건 아니다 싶고. 개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닌가? 내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고 싶더라도 결국 틀 안에서. 공동체의 삶을 무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알았으면.
3. 초자율 : 스스로 잘 한다는 거겠지? 내 마음대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그런 사회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돈은 누가 줄까를 굳이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유튜브나 긱서비스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해서 생긴 사회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좀 더 자율적인 것 같기는 하다. 잘하는 쪽으로도 못하는 쪽으로도.
정리하고 보니 여전히 나는 그들을 못 받아들이나 보다. 이런 꼰대스러움이 있나.
이러한 세대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지가 참 궁금했는데,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하려고 이 책을 샀건만 이해하지 말라고? 깜짝 놀랄 말이지만, 그 뒤를 보면 납득이 간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알기만 하라고. 실은 많이 알면 알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지니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이해를 꼭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왠지 내 맘을 편하게 만든다.
그냥 그들을 알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려주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분배하고 협업하면 되는거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여 개인적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면 되는 거다. 말로는 얼마나 쉬운지. 하나하나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학급경영도 학년경영도 학교경영도 결국 사람들이 달라졌으니 스타일도 달라져야 하는 건 당연한 것. 무엇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방안일지.. 그건 내가 찾아야 할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