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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Feb 12. 2024

[여행] 속삭이는 자작나무들의 학교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조금 더 있다간 눈이 없어질 것 같아 급하게 서둘러 나왔다. 이번 겨울에 꼭 가 보고 싶었던 인제 자작나무 숲. 예전에 인제에 놀러 왔다가 입산하는 시간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주차장에서 자작나무만 훑어보다 떠났다. 오늘은 설욕(?)전.


월, 화요일이 휴무라 수요일 아침 일찍 도전. 9시 입산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려고 부지런히 떠났다.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차량들이 분주했지만 외곽으로 다가가면서 점차 차량은 줄어든다. 가평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첫 끼를 해결하고 다시 걸음을 아니 운전을 재촉한다.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가는 도로. 어제부터 내렸던 눈들이 쌓여 제법 위험해 보였다. 제설을 누군가 해 주지 않는다면 꽤나 위험한 길일 듯. 뭐 낮에는 영상일테니 금세 녹겠지? 천천히 운전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자작나무숲을 거의 앞에 두고 만난 고갯길에서 SUV 하나가 멈춰서 있다. 어쩔 수 없이 속력을 줄였다만 그 차가 지나쳐가라고 손을 흔든다. 이런. 다시 액셀을 밟고 옆으로 추월하려는데 바퀴가 헛돈다.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오던 속력으로 지나갔으면 모를까.. 왕복 2차로라 유턴도 힘들다. 다행히 내 뒤로 오는 차가 없어 슬금슬금 후진. 가속할 거리를 확보하고는 다시 속력을! 하지만 내 생각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딱 거기만 가면 미끄러진다. 직진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서 올라가야 하기에 TCS 시스템이 계속 가동되면서 힘을 받지 못한다. 결국 인터넷 찬스를 통해 강제로 tcs를 끄고는 천천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랬더니 제설차가 내려가고 있더라.


겨우 올라간 꼭대기 주차장에 대충 대고는 자작나무숲으로 향했다. 주차료는 5000원. 하지만 상품권을 주니 무료라 생각해도 좋다. 자작나무숲도 입장료는 없다. 다만 아이젠이 필수라 입구에서 아이젠을 사야 한다. 5핀짜리 간단한 아이젠이지만, 나는 한라산을 노리고(?) 산 아이젠이 있어 그냥 통과. 입구에 계신 분도 그 정도면 스틱 없이도 충분하다고 끄덕이신다.



내 앞으로 몇 명이나 갔을까? 올라가는 길에 흔적이 세 줄 생겨있다. 많아봤자 3명? 내가 처음이면 더 좋았을까? 올라가는 길 내내 못 만나고 혼자 걸었다. 한적한 산길에 뽀득뽀득한 소리를 들으며, 토끼인지 고라니인지 아니면 청설모인지 모르는 발자국을 보면서 새소리와 함께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는 순간이란!



어느새 밝게 새인 하늘과 초록색 나무, 그 위에 올려진 하얀 눈과 바닥에 쌓인 하얀 눈.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이 눈을 계속 간지럽힌다. 여기에 하얀 자작나무가 더해지면 과연 무슨 느낌일까? 아이젠을 신고 눈길을 헤치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은 무거웠지만 두근거리는 도파민에 중독이 된 듯 속도는 더 빨라져 갔다. 드디어 도착한 자작나무숲 입구.


3월부터 2달 정도는 입산금지라고 한다. 지난 산불이 일어날 때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죽어나갔는지. 자연도 가꾸면서 보아야 오랫동안 잘 볼 수 있는 것 같다. 아쉽지만 여름에 봐야지.



여기도 낙서라는게 존재하는군. 자작나무가 껍질을 새로 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 1년이면 없어질 혹은 조금 더 갈지는 몰라도 나의 인연을 이런 곳에 기록하는 심보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무는 살아있는 생물인데 거기에 글씨로 남기려는 인간의 욕망이 참 대단하다 느낀다. 내 몸을 아프게 하면서 문신하는 사람도 있는걸. 그래도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으면. 껍질도 벗기지 말고 꼬챙이로 치지도 말고 낙서는 당연히 하지 말 것이며 등산로 아닌 곳은 제발 가지를 말기. 누가 선생 아니랄까 봐 이런 게 계속 거슬리는지 모르겠네.



앞에 가신 분이 사진 삼매경에 빠진 덕분에 잠깐이지만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는 영광을 누렸다. 내리막길이라 조심조심. 확실히 내려가는 길은 더욱 신경 쓰인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더욱더 언행을 조심해야지,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속도에 신경을 쓰면서 하산해야 등산 잘했다고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 한다. 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나무가 크면서 껍질이 갈라지면서도 자작거리는 소리가 날 듯도 싶다. 크면 겪는 성장통이 느껴지는 나무랄까? 저렇게 갈라지면서 나 크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 이 녀석들.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로 잘 자라겠지? 


아이들이 모여야 학교가 되듯 너희들이 모여야 숲이 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오늘 나무들의 학교를 다녀왔네. 추운 겨울에도 자라느라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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