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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Mar 11. 2024

꼭 비교할 필요는 없었는데

직업병인가?

교사라서 참 안되는 게 몇 가지가 있다.


명절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면 아이들을 관찰하게 된다. 잘 하는 아이야 뭐 다들 예뻐한다만 꼭 튀는 녀석들이 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엄근진이 된다. 물론 주변에서도 이야기를 하지. "이모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셔!" 그럼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굵은 목소리로 한마디 해 줘야 한다. 물론 최대한 부드럽게. 


맞춤법이 틀리는 글자만 나오면 고치려고 애쓴다. 답을 모를 때면 자꾸 검색을 하게 되고, 내가 생각한게 맞으면 왠지 뿌듯하다. 아, 지금도 왠지인지 웬지인지가 헷갈린다. 결국 구글을 찾게 된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 그렇다고 의미가 안 통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지.


아이들에 대한 평가를 늘상 하다보니 교감와서도 이 병은 못 고쳤다. 사람을 자꾸 평가하게 된다. 다 큰 어른들을 평가한다고 딱히 통지표를 줄 일은 없지만 마음 속 내내 이 평가를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내가 맞게 했는지 확인을 하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 욕망인가 보다. 그게 결국은 뒷담화로 이어지는 거 아니겠나?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평가 자체를 안 할 수는 없겠더라.


회의를 하는 데 누군가는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를 주고, 누군가는 아무런 자료 없이 회의를 진행한다. 너무나도 눈에 보이는 두 사람. 아쉬운 점이 나만 보일리 없다. '그래, 저 사람은 그냥 그런 거야' 라고 느끼고 지나가야 하는데, 입에서는 한 마디를 해 주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다. 아이들 같았으면 바로 앞에서 직설적으로, 아니 시작하기 전에 일단 기를 죽이고 시작했겠지. 어른이니까 관계를 생각해서 좀 더 나은 조언을 할 방법을 고민하는 거다. (실은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접근하는 게 맞겠지만..)


나는 늘 회의자료를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었다. 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냥 일회성 이야기를 자료로 만들어서 돌리는 수고가 왠지 헛짓같아 보일 때도 있었으니. 어쩌면 그 사람은 예전에 나 엿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그 때 내 주위에는 나같이 지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나보다. 그리 쉽게 넘어간 걸 보니.


결론적으로 나는 이야기를 했을까? 하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불편하긴 하더라. 그래서 여기에 쓴다. 회의자료를 준비하는 게 맞다고.


그냥 무의미한 회의를 한다면 안하는 게 맞는거고, 필요한 회의를 한다면 필요하게끔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맞는 듯 하다. 그래야 다음에 회의에 사람들이 오더라도 기대를 할 것 아닌가? 적어도 시간을 내어 온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떤 회의던 교장, 교감이 참석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별 의미없는 회의더라도 두 사람이 참석하게 되면서 좀 더 의미있는 회의로 바뀌게 되니까. 서로 불편한 점, 필요한 점들을 나누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러면서 학교가 조금 더 즐거워지고. 


다만,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비교하는 일을 좀 줄여보려 노력하련다. 아무래도 비교하게 되면 내 태도에서 드러나게 되더라. 눈을 꼭 감아도 살짝 풀린 눈꺼풀 사이로 빛이 실금으로 들어오듯이.. 그러니 비교해서 우월을 가리는 게 아닌, 각자가 존재 이유가 있고, 스스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야 한다. 휴...


나만 어려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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