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덜쌤 Apr 12. 2024

당신도 악성 민원이 될 수 있어요

해결방법을 고집하지 않길

교권보호라고 해서 민원대응팀을 조직하라고 한다. 


지난 9.4 이후로 민원에 대한 반감이 심해진 현장. 그에 따른 교육부의 대책이 나왔다.

그래서 학교마다 민원대응팀을 만들고 있다. 다만 처음이다 보니 여기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하다. 솔직히 교감인 나도, 교장선생님도 부장도 행정실장도 그리고 교사도 공무직도.. 다들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가득하다. 어쩔 수 없이 만들라고 하니, 교육부 매뉴얼에 최대한 근접해서 만든다. 그걸 좋게 좋게 처리해야 하는 내 마음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 



학교에 오는 민원의 유형을 대충 떠올려 본다.


1. 단순요청 : 학교에 오는 많은 민원 중에서는 "방학 언제 하나요?", "현장체험학습 언제 가나요?", "내일 학교에 못 가는데 결석신고서를 어떻게 내야 할까요?" "오늘 1학년은 몇 시에 끝나나요?" 라는 질문들이 종종 오곤한다. 특히나 학기 초에는 학사일정을 물어보는 질문들이 많다. 재미있는 게 모든 학부모들에게 학사력이 배부되었는데도 전화가 온다. 인근 학원에서 오는 건지 꽃집에서 오는 건지.. 알 수는 없다. 학부모라고 신분을 인증하는 건 아니니. 그런 것들은 보통 교무실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기에 딱히 민원이라는 생각은 안한다. 뭐, 담임 선생님들께도 단순 요청들이 많이 올거라고 생각한다. 부담없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민원쯤이야.


2. 협조민원 : 이것도 어떻게 보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교무실에 있다 보니 교육활동 민원만 접하게 되지만, 때로는 시설에 관한 민원도 올 때가 있다. 학교에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고, 체육관이나 운동장 개방에 관한 민원도 있다. 경력증명서나 생활기록부를 출력해 달라는 민원들은 행정실에서 정식 접수가 가능하다. 담당자가 있으니 그들과 협조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3. 관리자 대응민원 : 여기서 부터가 조금 곤란하다. 단순 요청도 아니고, 협조 민원도 아니기에 관리자가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9.4 이전에 받았던 민원 중에서 교사의 교육방침이 마음에 안든다는지, 자신의 아이에 대해 교사가 차별을 한다던지. 그런 민원을 제기하시는 분이 있다. 결국 이런 부분은 관리자가 대응할 수 밖에. 예전에도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있다면 이것도 잘 해결할 수 있다. 다만, 학부모가 해결의 방식을 고집할 때에는 문제가 된다.


교원의 보호 권리라는 건 결국 교감 교장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민원 응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답변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거부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왜 담임이 늦게까지 전화를 안 받는 거에요?" - 근무시간 외에는 응대하지 않을 수 있다. 받아주면 고맙겠지만 근무시간 외에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학교에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일 아침에 알아도 아무 문제 없다. 아니 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담임이 아니면 대응팀에서 전화를 하지 않을까? 다만, 전화가 아닌 문자를 남길 수 있는 통로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아이가 아픈데 미리 연락을 해 놓고 싶은 건 학부모의 마음이니깐.


"SNS에 수영복 사진을 올리시면 어떻게 하나요? 아이들이 보면 어쩌겠어요?" -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게 학부모 단톡을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게 되면 결국 그게 집단 따돌림이 되는 거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SNS를 학생, 학부모들이 모르게 하면 어떨까 생각은 하지만 그러든 말든 그건 결국 개인의 자유아닌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지 않고, 교사의 품위 유지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자유인으로서의 교사도 인정해 줘야 하는게 아닌지. 응당 이래야 하는 게 아닌지.. 라는 생각은 그냥 맘 속으로만 하셨으면. 


4. 상급기관 대응민원 : 학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을 우리는 악성민원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학교 앞 공사장에서 주변 펜스를 설치하지 않고 보도 주변에 공사물품들이 있다보니 걱정이 되셨나 보다. 학교로 전화를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통학로가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 공사장에서 안전에 유의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도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행정구청이나 경찰서에 문의하겠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도대체 학교는 뭐하는 거에요? 아이들이 위험한게 안보이나요?" 이렇게 호통을 친다고 해결되는 게 무엇인가? 왜 이 일로 학교를 혼내는 거지? 막상 이런 전화를 받게 되면 정신을 차리지를 못하겠더라. 회피를 하거나 같이 화를 내거나. 지금이야 좀 내공이 쌓여서 차분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은 한다만, 막상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결국 부들부들 떨고 말거다.


학교 밖의 일은 교사들이 해결할 수 없다. 같은 행정기관이라 생각하지만 협조의 대상인거지 우리가 그 위에 있는 상급기관이 아니다. 게다가 그 일은 구청이나 경찰이 좀 더 직접적이지 않는가? 학교가 그런 것까지 다 알아보고 사전에 미리 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건 본인의 생각이실 뿐. 교내 안전시설이나 안전교육을 시키는 곳이지 공사장에 가서 소장을 만나서 싸우는 곳은 아니라는 거지. 가장 쉬운 방법은 다산콜센터. 120번. 정말 해결이 빠르더라. 


뭐, 교감이 가서 이야기를 한다고 잘 들어줄거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순진한 생각. 교문 앞에서 학원이 찌라시를 돌려도, 잡상인들이 있어도, 심지어 불법주차를 하고 도망을 가도 학교가 억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없다. 경찰에 신고할 뿐. 그건 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닌지. 


이런 종류의 민원이 참 많다. 운동회때 마이크 사용으로 시끄럽다는 민원. 미세먼지인데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이 있다는 민원. 교문 앞 잡상인에 대해 계속 구청에 이야기를 해서 단속을 시켰더니 정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전단지 나눠주시는 분에 대한 민원. 심지어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에 대한 민원까지. 


시스템을 만든다고 혹은 시스템이 없다고, 관리자가 더 책임을 지고 혹은 책임지지 않고 그러는 건 아니다. 분명히 학교는 관리자의 책임인거다. 예전에는 그 책임을 좀 미루시는 몇몇 분들의 사례도 분명히 있었고. 아니 오히려 개별 교사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이는 분도 있었지. 반대로 좀 너무 하다 싶은 교사도 분명 있기도 하다. 한 쪽의 나쁜 사례들만 모아서 잘못되었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겠지. 분명한 건, 9.4 그 일 이후로 교무실로 걸려오는 민원들의 수준이 확실히 낮아졌다는 거다. 결국 서로가 조심할 수 있다는 건 긍정적. 그리고 이게 자칫 교원의 갑질로 인식하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민원은 들어주고, 소통하고, 논의해서 발전시키고. 말도 안되는 민원은 과감히 끊어내고, 지속하면 상급기관에서 상대하는 그런 사례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 게 숙제. 


시스템만 갖췄다고 잘 될 거라고 믿는 건 바보같은 일 아닐까?


학교도 노력할테니 학교를 바라보시는 다른 분들도 함께 해 주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봄, 사랑, 벚꽃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