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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Mar 31. 2024

[여행] 봄, 사랑, 벚꽃과 함께

진해 군항제를 다녀와서

올해 계획한 한 달에 한 번 여행. 그것도 멀리 가보기.

버스 여행이라는 재미를 안 덕분에 주말 동안 쉽게 갈 수 없다는 군항제에 다녀올 수 있었다.

지난 주에 매화마을을 가고 싶었는데 자리가 취소된 아쉬움을 만회해 줄건지. 

새벽에 출발하는 마음은 새벽 공기의 싱그러움과 함께 그렇게 뛰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보다 많은 버스의 행렬. 

지난 겨울에 남해에 다녀왔을때에는 그런 지 몰랐는데, 봄이 되니 확실히 상춘객들이 많다. 나도 거기에 일조를 하는 건가? 제 철에 움직이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네. 방구석에서만 뒹굴대는 나였다면 TV에서만 만나봤을 풍경이었을텐데 그걸 라이브로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보이는 초록초록함에 꽤나 눈이 즐겁다.

저것이 청보리인지, 아니면 다른 식물인지 알지도 못하겠다만, 소나무도 아닌 데 나무들이 초록인 것도 예뻤고, 햇볕 잘 드는 도로변에 핀 개나리가 노란색 손을 흔드는 모습들도 즐거웠다. 

벚꽃이 드문드문 보일 때마다 드디어 남쪽에 왔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는 빠져나가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전쟁은 시작된다.

수많은 차들이 모이고 벚꽃 명소들로 모이기 시작했다. 

폐역이라고 이야기하는 경화역을 향해 가는데, 가는 길거리 곳곳이 벚꽃이다. 

뭐, 경화역에 꼭 가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래 많은데.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벚꽃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도 찍는다.

가벼운 옷차림을 보고 나니 니트까지 입고 있던 내 등허리에서 땀과 함께 간지러움이 조금 묻어나는 듯 하다.

점퍼까지 입으려면 아무래도 덥겠지? 결국 니트는 벗어던지고 벗꽃 산책을 시작했다.



내가 간 3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벚꽃이 꽤 많이 폈다. 

제법 더웠고, 사람들은 정말 많았고. 기차길 사이로 걸어가면서 벗꽃들을 보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인생 사진을 건지려는 많은 커플들, 외국인들, 가족들.

머리에 벚꽃을 꽂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은 웃겼다. 웰컴투 동막골이 생각날 수 밖에.

나중에 보니 저 벚꽃 머리핀, 벚꽃 왕관(?)들은 일종의 기념품으로 판매하더라.

저건 아마 이번 서울에서도 유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윤중로에서 좌판을 벌여봐?


다른 사람들 얼굴이 나와서 부리나케 사진을 잘라버렸다.


낮에는 다행히 하늘이 파랬는데 금방 흐려졌다. 

좀 더 파란 날씨를 기대했건만 날씨는 쉽게 내 소망을 허락하진 않는다. 뭐, 비가 오면 어떻고, 황사가 있으면 어떻고, 미세먼지가 많으면 어떠리. 그냥 벚꽃은 피어야 할 때 피는 것 뿐이지.


해군기지도 가보고, 진해 시내도 가보고. 제황산이라는 시내에 있는 산에 올라갔다. 계단도 있고, 모노레일도 있던데 이왕이면 그냥 경사길을 느껴보고 싶어 주택가 옆에 나 있는 산책길로 올라갔다. 중간 정도에 어쩔 수 없이 계단을 만나긴 하더라. 그래도 주구장창 계단을 올라가는 것보다는 좋지.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해 지는 걸 보는 건 꽤나 근사하다.

그러고 보니 동그란 로터리가 보인다. 자그만치 8거리다. 신호등이 있을 수 없는 특이한 곳.

주변 안내도들을 슬쩍 살펴보니 진해라는 곳이 계획도시라고 한다. 

일제 시대부터 항구 바로 옆에 있어서 공들여 만들어 놓은 도시.

그래서 그런지 도시 한 가운데에 길들이 제법 직선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벚꽃도 무지하게 많다. 도시 안 어디를 돌아다녀도 볼 수 있는 게 벚꽃이다.


서울은 특별한 거리 주변에 벚꽃이 많아서 벚꽃 거리라 하는데, 진해에 오니 그게 다 쓸데 없더라.

그냥 여기는 벚꽃 도시. 그 자체!



저녁이 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차들도 정말 많았꼬 사람들도 정말 많고. 사람에 휩쓸려서 지나다니던데 얼마만이었을까! 

로터리 한 가운데에서 펼쳐진 공연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여좌천 야경을 구경하러 간다.



청계천 보다는 조금 규모가 작지만 아주 기다란 천이다. 그 좌우로 흐드러지게 펴 있는 벚꽃들.

인상적인게, 벚꽃들의 가지들이 냇물 가운데쪽으로 몰려들면서 벚꽃 지붕을 만들어 냈다.

다리 한 가운데에서 냇물쪽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으면 꽤나 신비롭겠다 싶었다.

역시나 다들 그렇게 사진을 찍기 위해 줄까지 서 있더라. 굳이 나는 그런 수고는 하고 싶지 않았다.

눈으로만 담으면 되지. 그런 사진들은 사직 작가들이 잘 찍어 주더라. 

그렇지만 막상 집에서 사진을 살펴보는 데 그런 사진이 없는 건 좀 아쉽긴 하다. 

역시나 남는 건 사진인가? 


빛을 그냥 뿌려 놓기만 하면 좋았을 텐데, 중간에는 너무 현란하게 쏘아대니 눈이 아프더라.

그걸 화려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좀 어지러웠다. 꽃나무의 화려함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냥 주인공을 빛내는 조연이 되어야 할 조명이 주연이 되는 부분은 조금은 아쉬웠다.

아마도 낮에는 또 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좌천도 꽤나 길다. 물가 바로 옆을 지나는 길은 폐쇄되었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그 좁은 길을 걷게 되면 벌어질 일들이 상상이 되니 잘 했다 싶기도 하다. 

봄꽃이 지는 다음 주말 정도에 오면 냇가에 벚꽃 잎들이 떨어지면서 장관이겠다 싶다. 딱 일주일만 여기서 살면서 꽃구경 실컷 해 보는 것도 좋겠는데. 나중에 은퇴하면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한 번 해 볼까나? 굳이 먼 해외에서 말고, 우리 나라의 예쁜 도시들에서 살기도 괜찮겠다 싶은데.


단지 하루 진해에 다녀온 건데 올해 꽃 구경은 이걸로 다한 느낌. 아주 만족스러운 주말이다.

일요일 내내 잠만 자다 겨우 정신을 차려 그 흥분을 여기에 담는다.


담는 다고 다 담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쓰는 그 순간만큼은 다시 진해에 가고 있다.

이제 다른 꽃들도 만나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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