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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May 14. 2024

스승의 날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교실에 몰래 숨어있다


평소보다도 아이들이 정문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보통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부모님이 학교에 일찍 데려다주는 돌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제법 키가 큰 녀석들 몇 명이 무리를 지어서 풍선을 들고 신나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아. 오늘이 스승의 날 전날이었군.


스승의 날이 빨간날이라 오늘이 북적북적일거다. 오전에는 학급 아이들이, 오후에는 제자들이. 담임을 안 한지 꽤 오래되었기에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을 듯 싶지만 귀찮다가도 막상 얼굴보면 새록새록 예전 기억이 떠올라 반갑기만 하다. 밥값은 좀 들어갈지라도.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 결국 6학년 교실까지 올라갔다. 쥐죽은 듯이 불도 꺼놓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반, 불꺼지고 문도 잠겨있고 아무도 없는 반, 그리고 불켜놓고 자기들끼리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반. 그 반 앞에 서니 아이들이 나와서 "우리 선생님께는 비밀이에요~"를 외친다. 


이녀석들. 너희들 소리가 1층까지 들리는데 어떻게 비밀이 되겠니?


서프라이즈의 기본을 다시 일깨워주고 돌아섰으나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소음은 새어 나온다. 저러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니탓이니 내탓이니 하겠지. 뭐, 그것도 추억이겠다만.


다른 반을 지나가다 보니 선생님이 혼자 계신다. 이런 날은 좀 늦게 오셔도 좋으련만. 그 분은 매일 그 시간에 출근하시니 그걸 눈치없다 할 수는 없겠지. 그 반 아이들은 다른 서프라이즈를 시도해 보지 않을까? 뭐 그럴 맘이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




내가 기본적으로는 수줍음이 많았나보다. 아이들 앞에서 온갖 쇼는 다하고, 사람들 앞에 강연하는 것도 잘 하지만 막상 주목을 받게 되면 송구스러울 때가 많다. 자신있게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람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생일날 축하받는 게 참 쑥스럽고, 내가 그렇다보니 상대방에 칭찬하는 것도 왠지 인색해진다. 그래도 어쩌랴. 이게 나인데.


선생님이기 때문에 맞닥뜨리는 스승의 날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 내가 무얼했다고 나한테 선물을 주며, 편지를 써 주는 걸까? 물론 너무나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라는 소심한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들볶나보다. 그래도 이젠 담임이 아니라 덜하지만, 전교생 앞에서 방송조회 몇 번으로 만나봤던 몇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들고 오는 건 부담감과 감사함이 혼재되어 기쁨복잡한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 내가 아이들을 챙겼던가? 어버이날 부모님께 인사만 드렸지. 성탄절이라고 부처님오신날이라고 딱히 소란스러운 게 없었던 나로서는 그냥 일상적인 날일지도. 그렇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야지. 암.


하지만 기념일을 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아쉬울만도 하다. 무언가 기념을 하고 그 뜻을 한 번 기려보는 건 나쁜게 아니니깐. 그 뜻이 부담스럽더라도 혹은 조금 고깝더라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테니.


그래서 이번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과 편지에는 꼭 그에 맞는 보답을 해 보려고 한다.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았다면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 주고, 작은 선물을 받았다면 나도 작은 선물을. 학급 아이들 다 보는데서 주는 건 어려우니 잠깐 교무실에 내려와서 마음을 전달해 주어야겠다. 혹시 이게 소문이 나서 너무 많은 애들이 주면 어떻하지? 라는 쓸데없는 망상은 잠시 내려놔야지.


이런 소소한 이벤트가 있어야 하루하루가 즐거운 법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로즈데이였네.

집에 갈때 장미 한 송이 꺾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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