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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Apr 16. 2024

태워다 주는 것도 고맙게 여겨야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조차 미안해

바쁜 아침시간. 정해진 루틴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고 나는 씻으러 가고, 아내는 식사 준비를 마무리하고 먼저 식사를 하고 씻으러 간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애벌 설거지를 하고, 내가 먹고 설거지를 마무리 하면 아내는 출근준비를 한다. 특별할 것이 없는 아침이었는데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게 좀 달랐다.


중간에 내려서 걸어간다고 했는데 비가 오니 걸어가는게 좀 안쓰럽긴 하더라. 그래서 아내 근무지 가까운 곳까지 데려다 주기로 마음 먹었다. 좀 돌아가는 길이긴 했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차만 막히지 않는다면.


역시나 빠듯한 시간.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좌회전을 받아야 하는데 어느 바보 같은 차가 느기적 대다가 신호를 놓쳐버렸다. 꼬리를 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앞의 차가 빠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한 차례 신호를 기다리는게 영 불편하다. 이런 상황 정말 싫어하는데 말이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갈 수도 있을텐데 괜히 맘이 불편하다. 그렇게 맘이 불편하면 맘 속에서 신경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거친 생각과 거친 말도 함께. 뭐 그게 아내를 향한건 아니었으니 아내도 잠자코 있었겠지?


좀 더 빠른 길을 가려고 골목길에 들어섰다. 신호등이 조금 있었지만 오늘 따라 잘 뚫리더라. 커다란 마을버스만 안 만났으면 딱 좋았을텐데. 양쪽에 주차된 차들이 있어 앞지르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뒤꽁무니만 졸졸. 이러다 내가 늦을 듯 싶어 열심히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근무지 앞까지 가는 건 무리. 가까운 정류장까지만 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 비는 보슬보슬로 바뀌었네. 걸어가도 무리가 없을 것 같으니 마음은 가볍다. 마을 버스가 서고, 그 다음으로 내가 서면 뒤차에 크게 불편이 없겠지. 그래서 정차하고 잠시 아내를 내려주려고 양쪽 깜박이를 켰다. 그런데 그 옆에 웅덩이가 있더라.


거기 웅덩이가 있어. 내릴 때 조심해

아이 어떻게 젖었네


그 다음 이야기를 들을 새도 없이 차문이 닫히자 마자 출발. 사이드 미러로 힐끔보니 신발 끝이 좀 젖었는지 발을 좀 털고 있다.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순간 왜 짜증이 났을까?


아니 태워주는 것도 고맙다고 할 것이지 말이야.


음? 생각해 보니, 걸어간다는 이야기를 꺼낸 건 아내였고, 굳이 내가 여기까지 모셔다 준건 내 의지였다. 골목길을 선택한 것도, 마을버스 뒤꽁무니를 따라간 것도 내 의지였고, 정차할 곳을 고른 것도 내 생각이었지. 그런데 왜 아내한테 짜증이 났을까? 나도 모르게 감사한 일이라고 강요한 것일까?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절대 짜증낼 상황은 아닌 듯 싶었다.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하면 안되지.


신발 많이 젖었어? 좀 더 기다렸다 앞으로 가서 내려줄껄. 미안

괜찮아 발 끝 조금 젖었어~


그렇게 카톡 메시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참 편안해 진다.

역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


퇴근 길에 비는 안 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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