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 설명서 (1)
일이 터지면 왠만하면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관여한 일들은 좋게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와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나와 가까운 몇 사람들은 뭐라 하더라.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그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던 것 같다.
너도 도와줄께. 걱정마.
나이를 반백살을 넘게 먹고 나니 이 말이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도와주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챙기기에는 너무 벅찬 시기가 왔다. 일이 터지면 돕기만 하면 되는데, 둘 사이의 분쟁에 끼는 상황도 점점 빈번해 졌다. 결국 한 쪽의 분노와 짜증을 감내해야 했고, 사람이 좋다는 이유로 나는 둘을 화해시키려 꽤나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해결했냐고? 해결한 거 반, 해결 못한 거 반. 그리고 해결 못한 반 중에 반은 나도 상처받고 말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도움이 돤다. 요즘은 이 말을 가슴에 묻고 산다만, 그 여유를 찾기가 참 어렵다. 내가 숨을 구석은 결국 내 행동의 매뉴얼을 만드는 거. 상황에 따라 처신해야 할 행동을 공식화하면 고민할 이유도, 상처받을 이유도 좀 적어지지 않을까? 이 나이 먹고 변하기도 어렵고. 그냥 살아오던 대로 나름 현명하게 사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뉴얼만 보고 움직여야 하나? 분명 그게 편한 일인데, 막상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오지랖을 자꾸 펼치게 된다. 그걸 계속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더 흐린 눈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누군가의 어려운 점을 듣게 되면 자꾸 돕고 싶다는 인류애가 쓸데없이 나온다. 그걸로 분명 나는 좀 더 불편해 지고, 어려워 질텐데. 그렇다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어느 장면을 보면 나는 굉장히 몸을 사리고, 내 편이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이기주의적 성향도 꽤 많다. 결국 내 편에게만 잘 해준다. 뭐 그러다보니 적을 만들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요즘 빼고..
나는 관리자를 잘 할 수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지고 살았는데,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이 곳은 마냥 좋게 좋게 끝낼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매뉴얼'을 자꾸 읽어볼 수 밖에. 매뉴얼도 결국 사람들의 합의다 보니 시대가 변하면 조금씩 변화하고 그 변화에 맞춰 내 생각도 바뀌어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할 일이 참 많다. 어쨌든 좋게 좋게 만드려면 누군가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내가 안 했을 뿐. 누군가는 했으니 내 주변이 편안했겠지.
불편한 이야기를 잘 하기
결국 이게 내 문제의 핵심. 상대방의 눈치를 잘 보는 내가 제일 못하는 거다. 조금만 안색이 흐트러지고, 말투가 달라져도 금방 알아채고 만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내 목구멍에 때려 박고,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하곤 했지. 그게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거나 부담이 되거나. 아니면 내가 감당을 할 수 없는 짐이 되어 버려, 그 타협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
매뉴얼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여기에 기안한다. 핑계거리가 되니깐 말이지. 그래서 결국은 관료적인 내가 되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분명 쪼잔하다, 너무 꽉 막혔다. 할 게 뻔하겠지만. 난 왜 이리 누군가의 시선에 예민한지 모르겠다. 이것도 자칫하면 마음의 병이 될텐데.
오늘도 누군가와 업무 분장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분명 이 일을 던지면 싫어할텐데, 그렇다고 이걸 내가 할 수는 없고. 매번 교장님께 이야기를 해야 하나?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를 해 볼까? 그러다가 안되면? 결국 학교장의 권한이니 그 분의 의견을 따라야 하지. 내가 교장이 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건가? 교장이 말했는데 안 들으면 어떻게 하지? 그냥 내가 하고 말까?
이러다 정신분열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