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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Jul 15. 2024

나는 눈치를 보며, 불편한 말을 건네기를 주저합니다

나 사용 설명서 (1)

일이 터지면 왠만하면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관여한 일들은 좋게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내가 있는 한도 내에서 도와주는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뭐라 하더라. 그렇게 까지 필요는 없지 않냐고.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던 같다. 


너도 도와줄께. 걱정마.


나이를 반백살을 넘게 먹고 나니 이 말이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도와주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챙기기에는 너무 벅찬 시기가 왔다. 일이 터지면 돕기만 하면 되는데, 둘 사이의 분쟁에 끼는 상황도 점점 빈번해 졌다. 결국 한 쪽의 분노와 짜증을 감내해야 했고, 사람이 좋다는 이유로 나는 둘을 화해시키려 꽤나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해결했냐고? 해결한 거 반, 해결 못한 거 반. 그리고 해결 못한 반 중에 반은 나도 상처받고 말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도움이 돤다. 요즘은 말을 가슴에 묻고 산다만, 여유를 찾기가 어렵다. 내가 숨을 구석은 결국 행동의 매뉴얼을 만드는 거. 상황에 따라 처신해야 행동을 공식화하면 고민할 이유도, 상처받을 이유도 좀 적어지지 않을까? 나이 먹고 변하기도 어렵고. 그냥 살아오던 대로 나름 현명하게 사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뉴얼만 보고 움직여야 하나? 분명 그게 편한 일인데, 막상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오지랖을 자꾸 펼치게 된다. 그걸 계속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흐린 눈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누군가의 어려운 점을 듣게 되면 자꾸 돕고 싶다는 인류애가 쓸데없이 나온다. 그걸로 분명 나는 불편해 지고, 어려워 질텐데. 그렇다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어느 장면을 보면 나는 굉장히 몸을 사리고, 편이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이기주의적 성향도 많다. 결국 편에게만 해준다. 그러다보니 적을 만들어 적은 별로 없었다. 요즘 빼고..


나는 관리자를 잘 할 수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지고 살았는데,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이 곳은 마냥 좋게 좋게 끝낼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매뉴얼'을 자꾸 읽어볼 수 밖에. 매뉴얼도 결국 사람들의 합의다 보니 시대가 변하면 조금씩 변화하고 그 변화에 맞춰 내 생각도 바뀌어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할 일이 참 많다. 어쨌든 좋게 좋게 만드려면 누군가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내가 안 했을 뿐. 누군가는 했으니 내 주변이 편안했겠지.


불편한 이야기를 잘 하기


결국 이게 내 문제의 핵심. 상대방의 눈치를 잘 보는 내가 제일 못하는 거다. 조금만 안색이 흐트러지고, 말투가 달라져도 금방 알아채고 만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내 목구멍에 때려 박고,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하곤 했지. 그게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거나 부담이 되거나. 아니면 내가 감당을 할 수 없는 짐이 되어 버려, 그 타협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


매뉴얼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여기에 기안한다. 핑계거리가 되니깐 말이지. 그래서 결국은 관료적인 내가 되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분명 쪼잔하다, 너무 꽉 막혔다. 할 게 뻔하겠지만. 난 왜 이리 누군가의 시선에 예민한지 모르겠다. 이것도 자칫하면 마음의 병이 될텐데.


오늘도 누군가와 업무 분장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분명 이 일을 던지면 싫어할텐데, 그렇다고 이걸 내가 할 수는 없고. 매번 교장님께 이야기를 해야 하나?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를 해 볼까? 그러다가 안되면? 결국 학교장의 권한이니 그 분의 의견을 따라야 하지. 내가 교장이 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건가? 교장이 말했는데 안 들으면 어떻게 하지? 그냥 내가 하고 말까?


이러다 정신분열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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