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를 생각하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들을 회피하면 참 좋겠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지구는 돌고, 사회도 돌고, 역사는 진행되고, 시간은 가기 마련이다.
굳이 내가 한 숟갈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딱히 대단하게 바뀌는 건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바라는 일들도 일어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작게만 느껴질 때, 차라리 이렇게 나와 무관하게 일이 지나가길 바랬다.
요즘이 좀 그랬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하루쯤 아니 며칠쯤 병가를 낸다고 해서 학교가 안돌아갈 일은 없다.
교실에 계신 선생님들도 일이 있을수도 있지.
누군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게 내 뜻도 아니고. 경조사휴가로 며칠 안 계셔도 아이들은 잘 지낸다.
하물며 교감이야 뭐. 하루종일 교무실에 있으니 출근했어도 있을까 없을까 알 지도 모를껄?
그런데 연말에는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한 해 살이 반성과 계획, 그리고 내년 인사까지.
들어줘야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더라.
이 자리 오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들어주고, 내 처지를 이야기하고 이해시키고
그러면서 서로의 적당한 과정을 협상했고 그런 일들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자리에 오니 내가 가진 카드가 너무나 적어 '협상'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물론, 그냥 하면 된다. 욕을 먹으면 되지. 어차피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돌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한데.. 늘 변수가 나타난다.
6학년 담임을 누가 할 것인가? 부장을 누가 할 것인가?
일이 다른 학년보다 힘들고 다른 업무보다 힘들다는 것 인정한다. 그래도 부장은 수당이라도 주지, 6학년을 한다고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업시간을 줄여주긴 하지만 예전과 달리 커버린 아이들에게 가는 손은 그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누가 반기겠는가? 고학년 체질이라고해서 매년 6학년을 해 주는 선생님께 마냥 감사할 뿐이지.
하지만 명백하게 보면 6학년도 결국 초등학생일 뿐이다.
6학년하고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건 결국 초등교사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셈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6학년은 해야 하는 거고, 그 '의무'앞에서 사람들은 내게 '자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 않을 '자유'는 필요하다. 하지만 해야 하는 데 하지 않는 건 안되지.
날개가 없는 사람이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하는 건 좀 곤란하다 싶다.
어쨌든 우린 교사이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걸.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피하고 싶은 자유를 누리지 못한 다는 걸 깨달았다.
교사였을 때에는 그냥 싫어요 외치고 그래도 나에게 주면 화난채로 받고 그랬는데
관리자란 이 직업(?)은 싫어요를 웃으면서 들어야 하고, 화가 난 사람을 잘 풀어줘야 하더라.
위로 올라가면 기분 나쁠 때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더 쉬울 줄 알았건만
자리가 높을수록 내 기분에 따라 조직이 왔다갔다 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기에 부정적인 감정은 최소한만으로 표시하고자 애쓰고 있다.
내겐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일이 없다.
그런데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그걸 피할 자유는 없네.
참 아이러니 하다.
왜 여기를 올라오려고 이렇게 애썼을까?
이럴 줄 몰랐던 거겠지.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