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극장판 무한성편, 2025
모처럼 영화관을 갔다. 여러가지 목적이 있었지만, 점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가는 아이와의 소통을 위함이 조금 더 컸다. 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과 우연히 겹친 것도 지분이 좀 있긴 하지.
대학생인데 휴학을 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큰 애도 이미 휴학을 한 터라 뭐 큰 걱정은 안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이 시간이 그냥 헛되이 쓰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지. 그런데 아이는 늘 유튜브에 인터넷에. 밖은 별로 안 나간다.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산다. 밥은 다이어트 때문에 덜 먹는 듯 하고. 이러다 히키코모리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잠깐 알바를 다녀오는게 다행이랄까? 그래도 왠지 무기력한 느낌이 들어서 대화를 시도해 본다. 그닥 길어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건 우연히 일본 노래를 들었을 때다.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언내추럴'이라는 국과수(?) 드라마 주제곡인 '레몬' 그 노래가 나오자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너튜브에 나오는 일본 노래 모음집을 틀었다. 나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는 눈이 그렇게 반짝이다니. 그 때부터 조금씩 아이의 취미를 따라가기로 했다. 뭐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방법이었다. 덕분에 큰 아이와도 유대감이 쌓였다. 두 아이 사이에는 그래도 정서교감이라는 게 존재했나 보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애니매이션을 굳이 영화관에서 본 건 뭐 이런 이유가 컸다. 아침부터 팝콘을 먹었고, 썰렁한 영화관에서 몇 안되는 사람들과 큰 화면으로, 빵빵한 사운드를 곁들여서 가만히 한 자리에 앉아서 봤다. 참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핸드폰으로 딴짓하지 않으면서 온 신경을 하나로 집중하는 건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애니매이션이 왜 이리 마음을 후벼파는지.
만화책으로 이미 완결까지 봤지만 분절된 장면이 상상이 안되어 그냥 휙휙 넘어갔던 것 같다. 나쁜 놈 나온다. 우리 편이랑 싸운다. 우리 편이 죽기도 하고, 결국 나쁜 놈이 죽기도 하고. 아 질기기도 하여라. 도대체 언제까지 나오는가? 뭐, 이런 기분으로 봤다. 그런데 애니매이션의 현실감이란.. 대단하다. 인간이 움직였으면 과연 저런 앵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CG가 범람하지만 차라리 애니매이션이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생각이 들더라. 잔인하기도 했지만 뭐 최고였다. 액션씬도 그리고 감정씬도.
신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부분이 좋았다. 오니와 귀살대와의 전투. 오니로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국 그 삶의 목적을 깨닫고 산산히 분해된 그 친구의 여운은 깊게 남는다. 결국 인간이기에 불완전하고 완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그걸 이길 수 있는 건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와 유대감이 아닐지.
부모, 형제, 그리고 스승, 아내. 유치하다고 해도 그런 관계들 속에 사람들이 사는 것이기에 금새 동화되고 이해하고 감정이 격해지더라. (울었다..는 표현을 꽤나 심오하게 해 봤으나.. 이런. 나이 먹으면 더 눈물이 나는 건가?) 다행히 아이도 2번 울었다고 한다. 그걸로 점심 식사 동안의 곁들임이 아주 훌륭히 완성되었다. 아내는 물론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투덜대었지만.
무언가 공유한다는 건 참 좋다. 장소와 시간을 함께 하고 그 안에서 경험과 생각까지도 나눌 때 비로서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게 아닌지. 그 공동체 속에 우리는 올바로 살아갈 힘을 얻는게 아닌지. 누구에겐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결국 그 누구가 있어야 비로서 나는 완성되는 게 아닌지.
결국 인생은 독고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를 이해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 1번이 가족이 되길. 아니 내가 그들의 1번이 되어주도록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