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특수학급이 좀 더 많아져야 혜택이 좀 더 넓어져야
1.
장애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될 수 있고 너도 될 수 있고,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걸 겪는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 가족이라면 어떨까? 나라면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 그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그 정도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다. 사람들간의 다른 정도의 차이는 결국 제도적으로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하는 문제일 듯.
2.
특수학교는 장애학생을 위한 학교이다. 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곳이다. 통합학교에 있기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하고, 보살핌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곳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좋지 않다. 일단 나오는 이야기. 부동산값이 떨어진다는 거다. 그 학교로 통학을 하려면 결국 장애학생이 있는 가정이 근처로 오게 된다는 근거에서 기반한다.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하지만 장애학교는 이미 혐오시설이 되어 버렸다. 우리 삶에 필요한 시설이지만 내 옆에 있기는 거부하는 그런 곳.
3.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이루고 살았을 때에는 적어도 눈치를 봤었고 염치가 있었다. 파편화된 사회가 되면서 점점 이런 것들에 둔감해 졌고 개인정보보호라는 틀에 숨은 익명성 속에는 이러한 정도가 심해졌다. 소위 공동체라고 말하면서 쓸데없이 간섭하고 제어하고 통제당하는 경험이 늘 좋기만 한건 아니었지만 도덕이라는 것이 유지되면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던 기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기심이 좀 더 유연해 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지나치면 파시즘이 될 수도 있겠지)
4.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말은 웃을 때에만 유효하다. 그게 복불복이고, 언젠가 나에게도 떨어질 수 있는 불행(?)인데 현실이라면 과연 재미만 있겠는가? 불공평한 일일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사회는 안전장치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게 조직적으로 더 유리하다. 물론 누군가는 적자생존, 승자독식, 약자도태를 외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외치겠지. 어떤 사회에서 사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가? 당신은 적자생존을 외치는 곳에서 끝까지 적자로 남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