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차별하고 있었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by 투덜쌤


1.

제목이 특이하다. 선량하다와 차별이 주는 어감이 어찌 비슷할까 싶다. 대비되는 두 단어가 주는 기묘함에 이끌려 이 책을 골랐다. 미운 오리 새끼일지. 아닐지.


2.

시작부터 불편하다. 결정장애. 이것을 장애인과 연결시켜야 하다니. 이 분이 특히나 소수자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곳에서 일을 하시다보니 이런 말에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말에 꼬투리를 잡자는 건 아닐테다.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이 숨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좀 과하다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무지한 것일수도 있겠지.


3.

‘다수자 차별론’ 소수자 때문에 다수가 차별받는 다는 생각. 이의 전제가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다’인데 저자는 차별받아 보이지 않는거지 (그것을 10% 구색맞추기 토크니즘이라고 이야기한다) 차별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남성 여성의 비율은 거의 5:5니까.


4.

다수가 가지고 있는 특권. 이는 발견되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러한 조건은 이미 갖춰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권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한다. 특권을 알아차리는 계기는 특권이 흔들릴 때다.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사는 사람은 평등으로서의 진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아니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손실회피편향. 자신이 가진 특권을 잃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법이다.


5.

앞의 1장만 읽는데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평등이라는 게 제로섬이 아니라는 점. 양보가 아니라 같이 평등해 지는 중이라는 것. 서로 똑같이 힘든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 힘들고 있다는 이야기. 평등해야 한다.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우리 안에는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을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점. 그건 결국 내가 가진 특권을 내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고 곱씹어 볼 내용들이 많다.


6.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차별이라는 게 결국 인간끼리의 문제일텐데 다수와 소수가 존재하는 이상 과연 그런 것들이 없어질 것일까 라는 회의도 들기도 한다. 끊임없는 차별에 투쟁하는 것만이 이 기울어진 공정성을 바로 잡는 방법이겠지. 어찌보면 내가 생각한 기울어짐과 당신이 생각한 기울어짐의 포인트가 달라서 서로 자기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졌다고 우길지도 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갈 수도 있고.


7.

글을 쓰느라 제대로 정독이 안된다. 읽는 느낌은 이 정도로만 하고 이제 끝까지 읽어보련다.


그나저나 내가 가진 특권은 뭘까? 남자대 여자에서 남자. 교사대 학생에서의 교사. 아빠와 아들에서의 아빠. 꼰대와 청춘에서의 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