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번째 무단 가출

이게 다 더워서 그래

by 투덜쌤

가끔 아내한테 투덜댈 때가 많다. 특히나 내 마음을 몰라줄 때가 더욱 그렇다. 꼭 말을 해야 아나? 그래도 같이 산지가 20년 다 되어 가는데. 그런데 아내는 이런 것에 대해 좀 둔감한 편이다. 밀당이란 없다. 통보해서 수용 또는 거부. 가끔은 떠볼만도 한데 그러질 않는다. 그에 반해 나는 좀 상대방의 맘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아내에 대한 이러한 인상은 내 주관적인 판단인 걸 안다. 그래도 그렇게 느끼다보니 내가 아내에게 섭섭함을 표현할 때가 많아진다.


그 날도 그랬다. 며칠 동안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방학이라 애들을 봐야하고. 그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슬슬 짜증이 나더라. 그래서 다음 날 저녁은 함께 나가기로 했다. 모처럼의 데이트를 기대하고 나름 열심히 애들도 보고 집안 일도 했다. 내 일이 아닌 청소까지 열심히!


그런데 모처럼 일찍 퇴근하고 와서는 침대위에 누워버리는 거다. 애들 점심을 챙기고 있는 중이라 아내가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일단 밥을 먹이고 학원을 보내는 게 먼저니. 겨우 애들 보내고 설거지도 끝내고 정리를 다 했는데,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래 힘드니까 그럴 수 있지.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 일어난다. 점점 오후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저녁시간이 다가오는데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한다. 겨우 아내가 일어났다.


“이런 시간이 많이 지났네. 지금이라도 나갈까?”


이미 짜증이 난 상황이라 저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지금 나가봤자 저녁때가 되니 금방 들어와야 한다. 딱히 뭘 하자는 것도 아니었기에 갈 곳도 없었다. 드라이브 하면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래서 안나갈꺼야? 그럼 다음에 나가지 뭐”


다음에 언제. 나만 나가고 싶은거지 당신은 아니잖아. 나때문에 억지로 하고. 그런건 싫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아니야. 왜 그래? 삐졌어?”


갑자기 열이 났다. 내가 무슨 애라고. 말을 하기 싫어졌다. 토라진 아이같이. 당신은 내가 왜 이러는 지 생각해 봤냐, 며칠동안 밖에도 안나가고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 그런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한다. 등등의 잔소리, 혹은 울분을 토했다.


“이제 주부의 마음을 아는거야? 나도 그랬어. 하하”


화가 뻗치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게 지금의 나의 마음에 위로라고 하는 건가? 내 마음을 알긴 아냐? 지금은 공감하고 위로하는 타이밍이지. 그걸 말이라고!


그리곤 집을 뛰쳐 나왔다. 내 인생의 첫 무단가출이다.


어둑어둑해 지는 밤거리를 그냥 막 걷고 있는데, 따라오는 발소리가 안 들린다. 음 마음 한구석에는 잡아주길 바랬나 보다. 그런데 말하지 않았는가? 통보 아니면 수용이라고. 딱히 마음 둘 일이 없을거다. 내가 나올때 이해안된다는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더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면 뭐하나. 걸음만 빨라졌지 목적지는 없다. 그냥 정처없이 가기만 한다. 커피숍? 아냐 잠 안 와. 만화방? 코로나라 실내는 위험해. 혼자서 당구장을 갈 수도 없고. 공원에나 갈까? 처량한데.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다 보니 음 내가 잘 한 것도 없는데 난 왜 그리 성을 냈나. 급작스러운 현실을 느끼는 시간이 돌아온다. 아주 쑥스럽다. 집에는 가야 하는데 가야할 적당한 타이밍도 못 찾겠고. 얼마나 더 돌아다녀야 할 지도 모르겠고. 우왕좌왕 갈팡지팡하는 그 때 나를 구해주는 문자 소리.


‘어디야? 사실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미안해. 어여 와’




그래 요즘 더웠다. 비도 많이 와서 끈적하기도 하고. 에어컨을 빵빵 틀려다가 전기세가 얼마나 나오려나 생각하니 켜기도 그렇고. (우리 집 에어컨은 10년도 넘었다. 여름에 한 두 번 쓰는데 바꾸기도..) 난 여름만 되면 짜증을 내는 듯 하다. 겨우 한 번 전업주부 역할 해 놓고는 생색내는 꼴이라니.


그렇게 내 첫번째 무단 가출이 끝났다. 가출한 사실을 아는 건 오직 아내밖에 없다는 건 천만다행이다. 애들한테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음 아빠가 갱년기라서 그래’ 그러면 아이들이 이해할까?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보다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 왜냐면 알아주길 바라는 건 상대방이고 이해하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상대방이 해야 하는 걸 강요할 수 없다. 그건 서로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더라. 그래서 좀 더 이해하기로 했다. 물론 아내는 이미 나를 많이 이해하고 있다. 이런 나와 같이 20년이나 사는 걸 보면.


앗, 참. 우리집에서 무단가출을 시행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하하하. 다행인거지? 좋아할 일이 절대 아닌거지만 나중에 아이들에게 얘기해 줄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절대 하지 말라고도 이야기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