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만 찾을 것인가, 우리편을 만들것인가

(3) 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 외, 프시케의 숲

by 투덜쌤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니 읽기가 힘들었다.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 타지펠의 ‘최소집단 패러다임’ 정체성의 정치, 부족주의, 교차성이론 등.


오래 생각해야 하고 다시 읽어봐야 했지만, 그만큼의 생각한 바가 많고 얻은 것도 많았던 부분이었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말.


우리가 부족주의를 지향할 채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부족적인 방식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부족주의는 결국 내편과 남편을 나누는 성향이다. 작은 기준 하나라도 내편일때 동질감을 더 느낀다는 말은 우리가 왜 자꾸 집단을 이루려고 하고, 그 집단 속에서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하는 가에 대한 답인 듯 하다. 결국 인간의 본성인거다. 하지만 그 방식이 옳지 않다. 아니 현명하게 발현해야 한다.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이 적이 되어버려서는 안된다. 내 편을 결속시키기에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과연 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단순해서 편하겠지만 반대로 사고를 고정시킨다. 결국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면서 나도 내로남불하고 있는 꼴이 되어 버린다. 이게 속칭 이야기하는 좌파나 우파가 과연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 할 자격이나 있을까? 누구 하나 반성으로 시작하는 사람 없으니.


학교에서는 그나마 보편적 인간성을 주제로 한 정체성 정치를 가르치는 것 같다. 인류애, 차별반대, 포용, 자비 등. 현실에선 무시되지만 이것이 사회에서 정말로 필요하다는 건 다들 안다.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실천하면 ‘바보같다’고 이야기 듣기 쉽상이라 문제지.


생각이 많아졌다. 분명 학교에서는 보편적 덕목을 가르치는데, 왜 사회는 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유불리만을 따지게 될가? 평화롭지 못한 사회일수록 보편적 가치가 들어설 입지가 좁아진다는 데... 지금 사회가 많이 불안한가보다. 그래 이것도 코로나 탓이라고 해 두자.


겨우 142쪽 읽었는데 진도가 못나가고 있다. 2부에서는 이러한 비진실의 일들이 현실에서 (물론 미국 예이지만) 어떻게 벌어지는 지 보여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론들만 있는 것보단 좀 더 쉽겠지?